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살 소녀가 투사가 되게 된 경위에는 사랑하는 6살 동생 질이 있었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폭발사고로 한쪽 얼굴이 사라진 채 죽어버린 아이스크림 할아버지를 본 순간의 충격은 너무나 컸지만 이런 아이들을 안고 위로해 주는 부모가 없다는 게 이 아이들의 불행이다.

남들의 눈에는 아빠 엄마가 있지만 소녀의 집은 오래전부터 부모가 부재한 상황

소녀의 눈에 비치는 가족의 모습은 아빠는 사냥하는 것과 위스키 그리고 TV를 시청하는 것 외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아이들의 엄마는 그저 한 가지 용도로만 쓰이는 단세포 아메바일 뿐... 부모 중 누구도 자신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안다.

소녀에게는 자신과 자신의 동생 질 단둘뿐이었다.

그런 소중한 동생 질이 그 사고 이후로 죽은 눈을 한 채 아무런 표정 없이 그녀가 사랑했던 미소를 잃어버렸지만 부모는 아이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니 아예 관심조차 없다는 걸 알기에 자신만이 동생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생의 변화가 질의 머릿속에 나쁜 기생충이 들어와 질을 잡아먹고 있어서라는 걸 알기에 소녀는 동생의 미소를 되찾고자 시간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더 이상 그 나쁜 기생충에 동생이 다 잡히기 전에...

과거로 돌아가 아이스크림 사고를 막는다면 동생이 돌아오리라 믿는 소녀는 타임머신을 만들기 위해 물리학과 양자물리학 등 공부에 파고들지만 그런 동안에 점점 동생은 잔인하게 변하고 있다.

동생의 변화에는 아빠의 느닷없는 관심이 있었고 아빠와 함께 사냥을 배우면서 그 잔인함은 극대화되어간다.

어린 소녀가 폭력을 행사하는 아빠와 무기력한 엄마 밑에서 자신과 어린 동생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여름의 겨울은 소녀의 성장과정을 위태롭게 그려내고 있다.

난폭하고 집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아버지와 그런 남편 밑에서 그저 숨죽이고 살 수밖에 없는 엄마 밑에서 자랐지만 소녀는 누구보다 똑똑할 뿐 아니라 상황을 판단하는 게 빠르다.

그래서 몇 해가 지날 동안 자신의 똑똑함을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영리한 반면 아버지의 목표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자신이 타임머신만 만들면 동생이 예전의 미소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순진한 면도 있다.

읽으면서 소녀의 소원처럼 동생 질이 예전으로 돌아오기를 같이 바라게 될 정도로 소녀의 작은 희망은 절박하고 그래서 질이 변해가는 모습이 더 안타깝다.

하지만 소녀의 짐승 같은 아빠는 소녀가 무사히 성장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지켜보고 관찰을 하다 방심한 순간 가차 없이 공격한다.

마치 사냥꾼이 짐승을 사냥할 때처럼...

처음에는 아내를 폭행으로 길들이더니 소녀가 성장함에 따라 목표를 소녀로 바꿔 인간으로서 짐승보다 못할 잔인한 짓을 태연히 저지르지만 소녀는 굴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 상황일수록 냉정해지고 점차 두려움을 이겨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 싸움에 절대로 굴복하지 않는 투사가 깨어나 아빠로부터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자 한다.

무차별적이고 잔인한 폭력에 굴하지 않고 숨 막힐듯한 긴장감 넘치는 집에서도 빛나는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여름의 겨울은 뜨거운 여름에 벌어지지만 그 내용만큼은 폭력처럼 서늘하고 차갑다.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녀의 성장기를 담고 있는 여름의 겨울은 상당히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인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