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아저씨 개조계획
가키야 미우 지음, 이연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대형 석유회사에서 정년퇴직한 쇼지의 계획은 이제까지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마누라와 호화롭지는 않지만 유럽이든 어디든 여행을 가고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것

딸은 비록 33세의 나이로 미혼이지만 아들은 이미 가정을 이뤄 자식을 낳고 열심히 살고 있다.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이다 싶은 쇼지에게 인생 최대의 난관이 생겼다.

아들이 손주들을 봐달라고 SOS를 보낸 것인데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이 퇴직한 이후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마음의 병인 후겐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아내는 이런 아들의 요청을 거부하고 자신의 아이를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고 자신들에게 맡기려는 아들 내외의 양육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

그중에서도 여자는 남자가 바깥일을 하면 집안일은 다 알아서 해야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쇼지에게 정직원의 일도 아닌 파트타임의 일을 그것도 아이들이 아직 3살이고 1살이라 가장 엄마의 손이 필요할 때 굳이 직장을 나가겠다는 며느리가 마음에 안 들지만 아들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어 망설이는 사이 떠맡게 되어 버린다.

언제부턴가 자신과 같이 방을 쓰지도 않고 식사 역시 쇼지의 몫만 차려주고 늘 그 자릴 피해버리는 아내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끼지만 무엇이 잘못된 건지도 모른 채 그저 매일매일을 지루하게만 보내던 쇼지는 손주들을 잠깐 돌보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늘 그저 한가하게 아이들과 놀면서 남편이 힘들게 벌어온 월급으로 편하게 놀고먹는다고만 생각했던 여자들의 일상은 손주들과의 1~2시간으로 여지없이 깨지기 시작하고 젊은 엄마들과의 대화를 통해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가지고 있다 생각했던 모성이 그저 신화에 지나지 않은 공염불이란 걸 깨닫게 되면서 일대 반전을 맞게 된다.

그가 이런 모성의 신화를 굳게 믿는 이유에는 몇 명의 자식을 낳고도 군소리 하나 없이 논밭의 일과 집안일을 하고 시부모까지 공양하면서 자신을 대학까지 보내주셨던 어머니에 대한 잔상이 굳게 남아있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때에 비하면 온갖 가전제품의 도움을 받을 뿐 아니라 아이들 역시 적게 낳고 그저 집안일만 하면 될 뿐인 요즘의 주부들 생활을 너무나 편해 그저 배부른 투정으로 들린 것인데 고향집에서 모처럼 모인 형제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이런 모친에 대한 잔상은 그야말로 혼자만의 망상이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그러면서 단 한 번도 집안일을 해본 적이 없었던 쇼지는 조금씩 며느리의 일손을 도와주는데 그렇다고 사람이 한 번에 변한 듯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해주면서도 투덜거리고 작은 일에 혼자 삐치기도 하는 등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이 아주 재밌게 그려져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족을 돌아보게 되는 쇼지

아내가 왜 후겐병을 앓게 되었는지도 똑똑한 딸이 왜 결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지도 알게 되고 알게 모르게 자신의 태도를 닮은 아들이 여차하면 가정을 잃을 위기에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알게 된다.

조금씩 남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해가며 퇴직으로 기운을 잃어가던 소지가 활기를 되찾고 멀어지기만 하던 가족이 가까워지는 모습이 유쾌하게 그려진 정년 아저씨 개조 계획은 가볍게 그려졌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소재다.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진지하면서도 날카롭게 문제제기를 한...일본소설의 장점을 제대로 살린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도 모르는 새 남녀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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