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에는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하는 차별을 없애고 남녀평등을 요구하는 것을 뜻하는 페미니즘에 조롱과 경멸을 담아 페미 충이니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 그런 페미니스트를 마치 세상 물정 모르고 오로지 여자들의 의무는 저버린 채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는 집단처럼 매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런 페미니즘을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변형 왜곡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강조하려는 사람도 있지만 오랫동안 전근대적 사고로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학습되거나 대물림 되어왔던 여러 가지 부당한 남녀 차별이 이제는 없어지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성들의 사회진출도 많아지면서 자신이 겪은 남녀 차별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페미니스트가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런 여성들 사이에서도 서로 갈등하고 대결하거나 서로를 비난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 책에 나오는 여자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일단 고교 동창인 세연과 진경의 관계가 이런 대립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진경의 경우는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었고 항상 인기 있는 사람이어서 늘 외모에 자신이 없어 학교 전체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해도 자신의 얼굴을 숨겨주는 화장을 포기하지 못했던 세연과는 정반대의 아이였다.

그런 세연에게 손 내밀어 주고 친구가 되어준 진경이어서 고마운 마음과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녀가 부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그녀를 향한 질투와 늘 사람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고 페미니스트 편집자가 된 후에는 자신의 그런 열등감이 상대방에 대한 경멸과 한심해하는 마음으로 대처된다.

그녀의 눈에는 지나친 외모 가꾸기에 열중하는 것도 친구와의 오랜만의 만남보다 남자를 그리고 아이를 우선시하는 진경의 태도를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을 뿐 아니라 남자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듯 보이는 진경의 모습이 의존적이고 자기 생각이라고는 없는 그렇고 그런 아줌마의 전형처럼 한심하게 보여 진경이 올리는 글에 답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은정은 우리 주변의 흔한 워킹맘이다.

늘 일에 쫓겨 아이를 제대로 볼 시간조차 없는... 그래서 아이가 시부모랑 함께 갔던 스키장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에도 자기 탓인 것처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자기가 일하지 않고 아이 옆에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남편이 바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며 회피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과 다르게...

이렇듯 여전히 사회에서는 여성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책임으로 요구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앞에 나서서 소리치고 자기주장을 하고 권리를 목소리 높여 부르짖는 사람들을 나쁘다고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여자들이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자들이 아름답게 꾸미거나 가정의 테두리에서 엄마로 아내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식이 부족하다거나 나쁘다고 비난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데 그런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게 상상 속에서 진경이 세연에게 하는 말에 있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거친 비난과 경멸의 시선을 보내기 보다 그 사람이 생각하고 변화될 시간을 좀 기다려주면 안 되냐고 모두가 똑같은 시선으로 같은 방향으로 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이 잘못된 건 아니라고...

세연이 진경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듯이 각자 서로 다름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페미니즘을 넘어 여성 연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싶다.

책에는 이렇게 두 사람을 비롯해 다양한 연령층을 등장시켜 그들이 사회에서 여자로 살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며 겪는 자기혐오와 불안,고민을 통해 페미니즘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