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웨이 다운
제이슨 레이놀즈 지음, 황석희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어젯밤 형이 살해당했다.

강렬한 글로 시작하는 이 책은 상당히 독특하다.

일단 문장이 이어져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여느 소설과 달리 마치 시나 아이들 간의 대화처럼 짧은 글귀로 이루어져 있고 복잡하거나 어려운 문장은 어디에도 없다.

짧고 간결한 문장을 보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힙합이나 랩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안에 쓰여있는 내용은 가볍지 않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형이 총에 맞아 쓰러진 걸 본 10대 동생

동생은 이 동네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자 한다.

첫째 울지 않고 둘째 경찰에 밀고하지 않고 셋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이 부분 반드시 복수할 것

동생은 밤새워 우는 엄마의 울음을 듣고 자신 역시 형의 복수를 할 것이라 다짐하며 형이 숨겨 둔 총을 찾아 비장하게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리고 8층 자신의 집에서 1층 로비까지 내려오는 동안에 있었던 일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은 슬픔과 분노에 젖어 있는 동생을 위로하지도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충고하지도 설득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 60초.. 엘리베이터가 로비까지 내려올 시간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날 뿐이다.

그 사람들은 어린 시절 처음으로 입 맞췄던 소녀에서부터 삼촌, 아빠, 형의 친구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총을 맞고 죽은 사람들이라는 거

단지 층마다 죽은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 타서 몇 마디 하는 걸로 소년이 처한 상황과 이 사람들이 살아왔던 환경에 대해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어제는 친구처럼 같이 어울렸던 사람이 나의 뒤에서 총을 쏘고 단 돈 몇 달러에 목숨을 걸기도 할 뿐 아니라 뭔가를 하려면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을 조심해야 하는 삶

그리고 그런 이들 사이에서 암묵처럼 따르는 룰은 이런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토양이 된다.

영화감독이 꿈이었지만 카메라를 살 돈이 없어 약을 팔다 쉽게 돈을 버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끝내 다른 누군가의 손에 죽어버린 삼촌처럼... 그리고 그런 형제의 복수를 한 후 누군가의 형제의 복수를 위해 죽은 아빠처럼... 끝없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악몽 같은 현실

엘리베이터 안의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하듯 대화하는 속에서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의 열악한 환경을 고발하고 있다.

왜 어린 청소년들이 쉽게 범죄의 길로 접어드는지 왜 그들 간에 끝없이 총질을 하는지...

아마도 저자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가 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족이 죽으면 참지 말고 울고 스스로 하려는 복수 따윈 잊어버리라고...

참으로 이상하게도 충고도 위로도 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과 대화를 보면서 오히려 소년이 느꼈을 큰 슬픔과 절망이 느껴졌고 죽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 해서 소년의 발걸음을 막고 싶어졌다.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처한 상황이 이 정도로 절망적이고 비극적일 거라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 충격적이고 안타깝게 다가왔고 유니크하고 감각적인 작가의 재능에 감탄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어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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