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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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본인 스스로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스스로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여기에는 아프고 충격적인 진실이 있다.

눈앞에서 자신의 아이가 아비라는 작자의 손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본 여자라면 이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을 겪은 후 끊임없이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여자가 어느 날 어린 소녀의 구원을 요청하는 소릴 들었다면... 그것도 같이 있었던 사람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소리였다면 자신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지

이렇게 살면서 어쩌면 일어날 법한 일이지만 괴이하거나 기이한 일을 소재로 하고 있는 야마시로 아사코의 단편집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은 그 바탕에는 상처의 치유와 사랑이 깔려있다.

그래서 무서울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들여다보면 슬픔과 애잔함을 느끼게 해서 무서움을 상쇄하고 있다.

어느 날을 기점으로 집안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남자의 유령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상생활이 흐트러지고 있는 남자

아내 역시 그가 보이지만 남편만큼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고 오히려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출현 빈도 출현 시점 등을 구체화해서 어느 시점에 유령이 자신들에게 붙게 되었는지를 유추하고 그 남자의 신원을 찾기 시작하는 부부

마침내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은 여느 추리소설 같지만 그 이후는 조금 다르다.

이 부부의 상처가 드러나고 그 유령을 통해 죽음이 끝이 아닌 삶의 흔적이 어딘가에 남아있다는 걸 납득하고서야 비로소 아내는 마음의 짐을 조금 벗어나게 된다.

무전기 역시 사후세계와 연결된 기이한 이야기인데 그 기저에는 마음의 상처가 있다.

쓰나미로 아이와 아내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남자가 자신이 선물로 준 무전기를 통해 어린 아들과 소통하게 되는 데 그렇게 무전기를 통한 소통이 무너질 수도 있는 남자를 일으켜 세우고 새롭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의지가 된다는 이야기는 안타깝고 슬프지만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머리 없는 닭, 밤을 헤매다 와 곤드레만드레 SF 그리고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역시 머리가 잘렸지만 살아있는 닭을 몰래 숨어 키우는 아이들과 술에 취하면 시간이 뒤섞이고 혼탁해지는 능력을 이용하는 남녀 등 소재가 특이하지만 그 뒤에는 잔인한 사건이 숨어있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죽이는 범죄

기이하거나 괴이한 이야기만 주가 된다면 현실과 동떨어져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작가는 잘 알고 있어서인지 현실에 일어날 법한 일에 심령현상이나 초자연적인 존재 혹은 괴이한 현상을 섞어 어쩌면 있을 수도 있을 법한 그럴듯한 판타지를 엮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괴이함 뒤에는 애잔한 슬픔이 깔려있고...

그래서인지 사건성만 본다면 무서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무서움보다 안쓰러움과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도 작가의 재량이 아닐까 싶다.

필명을 바꾸는 만큼 이야기의 무게도 분위기도 제대로 변화시켜 마치 다른 작가인 것처럼 쓸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새삼 놀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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