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사람들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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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 너머의 어둠 속으로 이름도 숨기고 몰래 숨어든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찾아 소리 소문 없이 처리하고 다니는 남자

비정한 도시의 뒷면에서 벌어지는 먹고 먹히는 관계를 냉정하고 일말의 감정 없는 톤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책은 전체적으로 음울하고 음산하다.

먹히는 사람들마저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늘 두려움에 쫓기듯 한 끼의 식사조차 여유롭게 하지 못한 채 사방을 경계하지만 그조차도 이내 잡혀서 어딘가로 끌려간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잡아서 처리하는 사람들 역시 알고 보면 먹히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다.

그 역시 재로부터 빌린 돈을 아버지 대신 갚기 위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처리하고 다니는... 자신의 모든 것이 담보 잡혀있는 상태나 다름없다.

재의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어디로 갈 곳도 없는 처지

하지만 그런 그도 어릴 적부터 하던 이 생활이 드디어 끝이 나고 재의 손아귀에서 벌어나게 될 순간 마치 누군가가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마지막 임무가 어그러져버린다.

절묘하기 그지없는 그 타이밍에 누군가의 의도가 숨겨져있지 않을까 하는 당연한 의문마저 떠올리지 못하는 남자가 답답하지만 13살 어린 나이에서부터 재에게 종속되어 그가 하는 명령에만 따르도록 학습되고 성장한 그의 이력을 보면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온갖 궂은일에 익숙해지고 사람을 처리하면서 자란 그가 외견상 누가 보더라도 자신보다 약하고 싸움이라곤 못할 것 같은 재에게 한 번의 반항은커녕 그를 부정하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하는 건 워낙 어릴 적부터 그에게 복종하며 자랐고 그에 대한 두려움이 심어져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런 삶 외에 다른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마치 새 장속에서 길들어져 버린 새와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런 그의 처지와 가장 닮아 있는 게 책 속에 등장했던 투견이다.

여자든 남자든 나이 든 노인이든 젊은 사람이든 상관없이 누구를 막론하고 처리해야 하는 그의 처지가 끝없이 싸워 이겨야만 하루를 더 살 수 있고 한 번이라도 지면 그걸로 끝장인 투견의 삶은 다른 듯 같다.

이제 자신의 실패에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 몰라 두려움에 떠는 그에게 재는 B 구역으로 갈 것을 명한다.

화학약품 사고로 도시 전체가 마치 죽은 도시처럼 폐쇄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라고는 독성 약품에 노출되어 변형되어버린 채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귀들뿐인 곳

그곳으로 간다는 건 살아돌아오는 걸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자는 재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처참한 모습은 남자에게 두려움과 함께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강한 열망을 심어주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 그런 그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갚지 못할 빚을 지고 또 그걸 갚기 위해 뭐든 파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절박한 처지의 사람들에게서 기생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 이름 없는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고 돈 때문에 인륜마저 저버릴 수 있는 비정한 도시의 모습을 음울하게 그리고 있다.

한번의 실패 한번의 실수는 모든 것을 앗아갈 뿐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것조차 쉽지않은...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어서인지 짧지만 묵직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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