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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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살 방을 구하러 다니는 여자 티피

그리고 그런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그녀의 친구들

티피가 이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녀가 지금 살고 있는 집주인이자 남자친구인 저스틴이 새로운 여자친구와 나타나 방을 비워줄 것을 요구했고 그런 이유로 한시라도 급히 방이 필요한데 런던의 물가는 살인적이라 그녀가 가진 예산으로는 옳은 방을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녀는 지금 사랑도 잃고 살 곳도 없는 막막한 처지

어쩔 수 없이 또다시 누군가의 방을 셰어하기로 하지만 이번엔 더 불리한 조건이다.

방을 나눠쓰는 정도가 아니라 한 침대를 같이 써야 하지만 그녀가 가진 돈으로는 이 정도가 최선... 같은 침대를 쓸 사람이 그저 평범한 사람이기만을 바란다.

여자친구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침실을 나눠쓰기로 한 남자 리언의 사정은 이렇다.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로 주로 야간 업무를 하고 있지만 그가 자신의 침대를 낯선 사람과 나눠써야 할 정도로 돈이 급한 건 동생 리치 때문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동생을 위해 변호사 비용이 필요하고 목돈이 나올 데라곤 자신이 기거하는 방을 빌려주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비록 여자친구가 반대하고 누가 봐도 다른 여자랑 같은 침대를 써야 하는 상황이 정상은 아니지만 동생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불편은 감수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한다.

이렇게 각자가 절실한 경제적인 이유로 한 침대를 나눠쓰게 된 남녀

특별한 걸 공유한다는 이유로 두 사람이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질 것 같지만 그렇게 쉽게 가면 밋밋해질 수 있기에 핸디캡을 둔다.

두 사람은 절대로 만나서는 안된다는 게 이 셰어하우스의 계약조건이라는 게 첫 번째 핸디캡이라면 리언에겐 연인이 그리고 티피에겐 지금은 헤어졌지만 언제 다시 합칠지 모르는 전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걸 막는 두 번째 핸디캡이다.

게다가 9시 출근해 6시에 집에 오는 평범한 직장인인 티피와 밤에 근무해 아침에 티피가 이미 출근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리언은 시간상으로도 만나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

그런데도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게 되고 서로를 마음에 담는다.

이렇게 되기 전 두 사람의 소통 도구는 전화도 이메일도 메신저도 아닌 그야말로 구시대 유물 같은 쪽지다.

쪽지에 서로 할 말을 써서 집안 여기저기 붙여놓고 출근하면 다른 사람이 퇴근하면서 쪽지를 읽고 또다시 쪽지에 답을 하는...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핸드폰도 없던 무렵 친구들과 서로 쪽지를 던져가며 의사소통했던 모습과 닮아있는데 의외로 이 구시대적 방법이 상당히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티피의 상당히 감각적이고 유머러스한 문장 덕분인듯한데 그런 덕분에 폐쇄적인 성격의 리언조차도 그녀의 쪽지 덕분에 웃음 짓는 일이 많아진다.

이 두 사람의 소통 방법은 요즘같이 빠른 걸 추구하는 사람이 볼 때는 답답한 감도 있지만 늘 소극적이고 사람 앞에 나서는 걸 어려워하는 리언이나 이제 막 오랫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한 짓이 뭔지를 깨달아가는 티피에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며 의사소통하는 이런 방법이 숨 쉴 수 있는 여유를 줘서 어울렸고 그런 덕분에 쉽게 서로에게 빠져들 수 있었던 듯하다.

자신도 모르는 새 남자친구에 의해서 스스로는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고 늘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위축되어 있던 티피가 기다려줄 줄 알고 배려할 줄 아는 섬세한 남자 리언을 만나 자신감을 찾아가며 조금씩 서로에게 빠져드는 모습이 사랑스러운 소설이었다.

깊어가는 가을에 어울리는 달콤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소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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