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손을 보다
구보 미스미 지음, 김현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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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이지만 읽으면서 한없이 쓸쓸해지고 마음이 침잠하는 걸 느낀다.

어쩌면 사랑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그려서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져 자신을 잃고 변해가는 사랑을 보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너무 덤덤하게 그리고 있는 데 읽으면서 그 마음이 느껴지고 공감이 가서 더 우울해졌다.

이 책에는 4명의 남녀가 나와 각자의 시선에서 사랑을 그리고 변해가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래도 좀 더 주축이 되는 사람은 아마도 히나와 가이토가 아닐까 싶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란 히나는 그런 할아버지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노인 요양사의 길을 걷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한창나이에 특별한 취미도 관심도 없이 살아가는 그녀가 그저 답답하게 보일뿐이다.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흔들릴 때 그런 히나의 옆에서 오랫동안 그녀를 돌봐주고 사랑해주는 남자가 가이토지만 그런 가이토의 친절과 사랑에도 불구하고 히나는 그에게 별 마음이 없다. 그저 익숙할 뿐...

오롯이 가이토만 절절 애타게 끓는 마음을 가지고 일방적인 사랑을 하는 위태로운 이 연인에게 한 남자가 다가오면서 모든 것이 변해버린다.

노인 요양사의 모습을 취재하러 도쿄에서 내려온 미야자와

직업의 특성 때문이지 어딘가 자유롭게 메인 것이 없는 것 같은 미야자와와 섹스를 하면서 자신도 몰랐던 성에 눈뜨고 점차 미야자와에게 빠져드는 히나지만 미야자와는 현재 아내가 있는 몸이다.

게다가 자유로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미야자와 역시 하는 일이 위태롭고 아이를 원하는 아내를 피하기 위한 도피처로 선택한 것이 히나였고 히나가 있는 이곳이었다.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돈에 구애받은 적이 없는 풍족한 삶을 살아왔지만 어릴 적부터 각자의 생활에 바쁜 부모에게 제대로 된 애정을 받은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 탓인지 자신의 곁에 그 누구도 가까이하지도 않고 또 상대가 너무 가깝게 근접하면 참을 수 없는 갑갑함을 느끼는... 천성이 누구도 곁에 두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차가운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에게 히나는 잠시 머무를 안식처일 뿐... 언제든 떠날 수 있다.

자신만 바라보고 모든 걸 버리고 떠나온 그녀 히나의 마음은 알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다.

누가 봐도 미야자와는 잠시 가지고 놀 상대로 히나를 대할 뿐 이란 걸 알지만 그녀가 그를 그토록 사랑한다면 아파도 내가 놔줄 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이혼녀 하타나카와 몸을 섞는 가이토...이렇게해서라도 히나를 향한 마음을 끊고싶다.

그녀를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몇 해를 같이 살았고 하타나카의 아픈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 책임감으로 결혼하고자 하는 가이토

하지만 히나를 잊은건 아니다.히나가 떠나버린지 오래지만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뻐근해진다.

이렇게 서로 다른 방향을 보는 네 사람은 누군가는 사랑해서 함께 살지만 어느샌가 그게 일상이 되면서 반짝거림이 사라지고 또 다른 부채와 무게로 살아가거나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 그저 책임감 때문에 묵묵히 살아간다.

사랑 때문에 죽을 것 같이 괴롭고 힘들고 사랑 때문에 행복했던 그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새 일상처럼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 사랑 때문에 울고 웃지 않는다.

반짝거리던 사랑이 일상에 함몰되어 가는 과정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그려져 한없이 기분이 가라앉고 읽으면서 가슴이 헛헛해짐을 느꼈다.

이렇게 변해버릴 것 알면서 왜 그렇게 사랑에 목을 매는 건지...

게다가 히나와 가이토 그리고 무책임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하타나카까지 미야자와를 제외한 세 사람의 직업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노인 요양사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곧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들 역시 한때는 사랑 때문에 울고 웃고 사랑 때문에 잠 못 이룬 적이 있었지만 어느샌가 혼자서 인생의 끝을 향해 나아가는 노인들을 보면서 사랑의 그 부질없음이 더 뚜렷하게 대비되는 느낌이다.

쓸쓸한 이 가을에 읽으면 더 좋을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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