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 속 지옥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6
유메노 큐사쿠 지음, 이현희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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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 후반부터 1945년 전후의 일본 추리소설을 엮어 만든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는 일본 추리소설의 시작과 발전방향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시리즈라고 할 수 있겠다.

서양에서 일본에 추리소설이 유입되었을 당시부터 시작하여 전후 시대의 주요 작품을 연대순으로 기획한 이 시리즈는 그래서인지 요즘의 추리소설과는 분위기도 다르고 전개 방식도 다른데 그 색다름을 즐기는 게 이 시리즈를 보는 재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이 책의 저자 유메노 규사쿠는 추리소설 독자라면 잘 알고 있을 일본 추리소설의 3대 기서 중 하나인 도구라 마구라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여기에 실린 그의 작품은 추리소설이라기보다 괴이 소설, 기이 소설에 가까운 게 많은듯하다.

일단 등장인물 중에 광인이 많다는 것도 그렇다.

도구라 마구라 역시 광인의 정신 상태를 주로 다뤘다는 걸 보면 그가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난폭성이나 광기 같은 조금은 남다른 부분에 관심이 많았던 걸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쉽지 않아 평범한 사람이 이해하기에 조금은 난해하고 복잡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듯한 느낌을 받은 건 나 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걸 보면 그가 왜 동시대를 비롯해 지금까지 높은 평가를 받는지도 알 수 있을 듯...

여러 단편 중 기괴한 북과 사갱은 괴이함과 환상이 뒤섞여 있는 작품이다.

북을 만들 때 자신을 버린 정인에 대한 원망과 저주를 넣어서 만들어 정인의 집안을 비롯해 이 북소리를 듣는 사람 모두를 불행에 빠트린다는 이야기는 그의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 있다.

어딘지 음산하고 괴괴하며 뭔가 씐듯한 무겁고 답답한 분위기랄까... 사갱에서도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목숨을 걸고 석탄을 캐는 일을 하는 광부가 생각지도 못한 인연으로 한 여자를 아내로 맞지만 이 아내에게 버림받은 연인과 같은 갱에서 목숨을 걸고 일을 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끝내 그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환상과 광기가 뒤섞여 현실과 꿈을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데 그가 본 것이 진정 현실인지 그가 그린 환상인지 읽으면서도 헷갈린다.

책 제목으로 쓰인 유리병 속 지옥은 그의 단편 중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 하는데 짧은 분량 속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도덕과 쾌락을 추구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것을 세 통의 편지를 통해 그리고 있는데 왜 이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사후의 사랑과 인간 레코드는 러시아 혁명 이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특히 사후의 사랑은 일본군 병사였던 노숙인의 입을 통해 로마노프 왕조의 보석과 공주의 비참하고 안타까운 운명과 슬픈 사랑을 그리고 있다.

장난으로 죽이기는 아름다운 외모의 여배우였던 여자가 보이는 동물을 향한 엽기적인 행각을 그리고 있는데 그 그로테스크함과 잔인함은 아름다운 외모와 죄의식이 전혀 없는... 어찌 보면 어린아이의 순수한 잔혹성을 담은듯한 그 대비가 더 섬뜩하게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그의 작품은 그가 활동하던 당시부터 상당히 기괴하고 특이하는 평을 많이 들었다는 걸 보면 그의 정신세계와 작품 세계는 평범한 사람이 온전히 이해하기엔 쉽지 않을듯하다.

그럼에도 그가 그린 작품의 면면에서 인간의 본질에 가까운 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런 걸 보면 그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많은 걸 탐구하고 깊이 있게 생각하고 고민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에 추리소설 장르가 도입될 당시의 분위기나 일본 추리소설의 원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읽어봐야 할 시리즈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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