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의 재구성 -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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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범죄가 잔악해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 중에 재판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와 국민적 공분을 살 때가 있다.

거기에다 유명 정치인이나 재벌들이 지은 죄에 비해 너무나 가벼운 형량을 받고 그걸로도 모자라 병보석이나 혹은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날 때 사람들은 허탈감에 빠져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말하고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만 간다. 사실 국민 정서상 법 감정이랑 실제 재판에서의 법 적용에는 분명히 괴리가 있는데 여느 나라에도 존재하는 이런 온도의 차이가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심하다.

어쩌면 저자는 중간의 입장에서 그 괴리의 차이를 좀 줄이고자 이 책을 쓴 게 아닐까 혼자 미뤄 짐작해본다.

이 책에 나오는 사례는 재벌이나 정치인들의 봐주기식 재판이 아닌 살인사건 중에서도 높은 관심을 끌었으나 재판 결과가 의외의 결과로 나와 사법부에 대해 분노하게 했던 재판 중에서 추려내어 다시 돌아보고 왜 그런 판단을 했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변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저자의 입장이 판사 출신 변호사인데다 추리소설 작가로 활동하고 있어서인지 완전히 판사의 편도 그렇다고 법에 대해 잘 모르는 평범한 시민의 입장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서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고 각자 상대방의 입장에서 답을 주는 것 같은데 그래도 재판부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진 듯 느껴졌다.

그리고 같은 판사의 입장에 있을 때는 차마 말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다른 의견을 밝히고 있는데 재판을 하는 것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라 외부의 요인이나 판사의 성향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죄인을 놓칠 수 있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낙지 질식사 사건이나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사건 같은 경우는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그 재판에 관심을 가졌지만 첨예한 대립 끝에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와 법에 대해 더욱 불신하게 한 계기가 되었는데 저자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사건을 들여다보고 1심 판사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으며 그 재판이 상고심에서 뒤집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같은 판사의 입장에서 들여다본다.

상황이 분명하고 정황상같이 있었던 용의자가 범인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한 사람은 비구페쇄성 질식사에서 나타나는 징후가 안 보인다는 이유로 또 다른 사람은 보험금을 노려 살인을 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유죄판결을 내린 재판을 뒤집는 결과를 가졌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도 할 말이 많은듯하다.

어쩌면 같은 판사의 입장에서도 왜 그 사건을 그렇게 판결 내렸을까 좀 더 다른 접근을 통해 다른 결론을 내렸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 밖에도 아직도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김성재 살인사건에서 보인 재판부의 납득할 수 없는 결정에 대해 사건을 재구성하고 그 판결에서 느낀 아쉬움과 답답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용의자였던 여자가 집안이 부유하고 힘이 있었다는 말들이 나돌아 그때의 재판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소개된 사건 대부분이 한 번쯤 들어봤던 사건들이라 재판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딱딱하게 느껴지거나 지루하지 않고 마치 한편의 영화 같은 소설을 보는 듯 한 걸 보면 역시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여론에 이끌려 혹은 심증이 간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을 소홀히 해선 안되기에 판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때론 오판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지금도 분명히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내려지고 있고 국민들이 느끼기엔 재벌이나 힘 있는 사람과 일반인들 사이에서 내려지는 판결에 차이가 존재한다고 느끼고 있다.

가장 공명정대해야 할 사법부로서는 깊히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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