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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의 비밀 편지
스텐 나돌니 지음, 이지윤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10월
평점 :
100세가 넘은 할아버지가 갓 태어난 손녀에게 편지를 쓰고 그 편지를 손녀가 성인이 되어서 받아볼 수 있도록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부탁하면서 시작하는 마틸다의 비밀 편지는 할아버지의 나이가 범상치 않게 많은 것부터 평범하지 않지만 무엇보다 남다른 건 그 할아버지가 마법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자식과 손주들은 놔두고 이제 갓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에게 편지를 남길 결심을 한 것은 첫눈에 그를 사로잡은 손녀이기도 하지만 그 손녀에게서 자신과 같은 마법사의 재능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편지 내용은 자신과 같이 마법사임을 기뻐하면서도 손녀에게 자신이 터득한 마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언급은 피하고 있다.
이 편지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갈 경우 손녀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인데 그가 이토록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사랑하는 아내 엠마와 자식들과 2년간이나 떨어져 지내야 했는데 그건 자신이 마법사임을 아는 또 다른 마법사이자 평생의 적이었던 슈나이데바인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슈나이데바인과의 악연은 처음엔 서로 마법사임을 알아보고 친구관계로 시작했지만 곧 서로에게서 뭔가 맞지 않는 걸 깨닫고 서로를 싫어하다 종내에는 서로에게 평생의 적으로 끝나게 되는데 서로의 성향과 모든 것이 안 맞는 데다 결정적으로 엠마를 그의 눈앞에서 가로챈 게 가장 결정적이지 않나 생각하다.
이렇게 세상에서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마법사라 해도 그 재능을 무조건 좋은 일로 만 쓰는 것이 아니어서 마법을 이용해 어려운 전쟁 속에서도 누군가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슈나이데바인처럼 정치에 개입해서 적극적으로 그들과 함께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탄압하는 마법사도 있는 걸 보면 마법을 할 수 있다는 것만 다를 뿐 그들도 우리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 파흐로크는 자신이 뛰어난 마법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재능을 허투루 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세상은 마법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손녀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
이외에도 12통의 편지 모두에는 그가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과 그때 당시 배운 마법기술에 대해 이야기를 해놓았는데 마법기술은 그의 삶을 조금 부드럽고 편안하게 해주었을지 모르지만 모든 삶이 그러하듯 그 역시 타고난 재능에다 끊임없는 새로운 것에 대한 궁금증을 공부하고 노력하는 노력파였고 그래서 쉽게 얻은 행운은 쉽게 잃을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세상은 노력 없이 요행으로 살아선 안된다는 교훈을 깊게 각인하고 손녀에게도 전하고 싶어 한다.
전쟁이 극한으로 치달을 때도 배고픔으로 힘든 날을 보냈을 때도 그와 아내는 삶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주변을 보살필 줄 아닌 따듯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그의 삶에 대한 태도는 본받을만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격변하는 큰 흐름 속에서 살아온 영향인지 현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파흐르크가 세상의 큰 흐름 속에 등장하는 정치가와 그들의 구호 그리고 정치적인 견해를 바라보는 시선은 냉철하면서도 곧다. 그건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을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삶의 통찰에서 나온 게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손녀가 삶을 즐기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저 자신이 가진 재능은 약간의 윤활유로서만 사용하기를 바라는 파흐르크의 마음은 여느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
마치 손녀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듯 풀어놓은 마틸다의 비밀 편지는 이렇게 훈훈함 속에 끝나는듯하다 자신이 마법사가 아니라는 파흐르크의 부정으로 분위기를 급반전한다.
끝까지 독자의 시선을 잡은 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