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제목에서부터 여유와 상당히 고급스러운 취향이 드러나는 이 책은 모리 마리의 산문집이다.
그녀는 우아함을 표현하는 데 뛰어난 에세이스트라는 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문장이 천진스럽고 맛을 표현하는 글들이 많아서인지 잘 읽히고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가만 들여다보면 심각한 상황이 분명한데도 글을 읽으면 큰 걱정을 하지 않는 듯하기도 하고 당시 시대에 흔하지 않는 불어를 배운다거나 아버지가 독일에서 사다 준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녀가 상당히 유복하고 풍요롭게 살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음식에 대한 글이 많은가 싶기도 하지만 그녀가 살아온 삶을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는 게 태어나기도 부유하게 태어났고 아버지는 의사이면서 독일에서 몇 년간 살았을 뿐 아니라 독어를 번역해 책을 내기도 한 인텔리였으며 비록 나중에 이혼했지만 전남편 역시 부자였기에 그녀에게서 생활감이 묻어나지 않고 천진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된 것 같다.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그녀 모리 마리는 상당히 개성이 있는 쪽이다.
미적인 감각이 예민한데 그중에서도 특히 음식 취향이 상당히 까다롭고 고급스럽다.
그런가 하면 부잣집 딸로 태어나 평생을 음식이라고는 먹을 줄 만 알았지 만들지 모를 것 같은 그녀가 음식을 상당히 잘 만든다는 것도 조금은 의외다.
그녀의 지인 모두가 그녀가 음식을 한다는 것을 상당히 의외로 받아들이지만 일단 그녀가 만든 음식을 맛보면 모두가 감탄한다는 글을 보고선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 오래전 이혼 후 만나지 못했던 장남과의 이야기 속에서 그녀가 만든 음식이 얼마나 맛있었으면 세숫대야만큼 큰 그릇에 든 음식을 다 먹었다는 표현이 몇 번 등장하는데 재밌으면서도 그녀가 자신이 만든 음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글 곳곳에 등장하는 낯선 음식에 대한 글도 좋았지만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특별했던 그녀의 아버지에 관한 글이 마음에 와닿는다.
그중에서 아버지가 그녀에게 보낸 편지들이 인상적인데 시집 간 딸이 남편의 부재로 외로움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자 그에 대한 답장으로 보낸 글이 ``그때그때에 따라 인간에게는 감이 제철인 시기와 배가 제철인 시기가 있다. 배가 제철일 때 감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건 잘못됐다``는 편지로 딸에게 삶의 교훈을 주고 편지에 제비꽃을 넣는 감성적인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비록 여자로서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지만 아들과도 마치 나이 차이가 나는 연인처럼 지내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서 먹으며 싫은 건 싫다고 말하고 소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찾는 그녀는 요즘 말로 치면 상당히 쿨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녀가 소개하는 음식 중 상당수가 서양 음식이면서 흔히 먹지 않는 음식이 많아 책을 읽으면서 그 맛에 대해서도 궁금하고 비록 맛을 모르지만 글로 맛을 느끼는 재미도 좋았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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