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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요즘 <피에 젖은 땅>을 읽고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잔혹함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요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같이 읽었다.
'저항 작가','반체제 작가'로 유명한 솔제니친(1918~2008)은 1918년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1941년 입대했다. 1945년 포병 대위로 복무 중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탈린 체제를 비판한 것이 문제가 되어 8년 강제노동형과 3년의 유형을 선고받았다. 1945년부터 1956년 까지 여러 수용소를 돌며 겪은 경험은 훗날 솔제니친 문학의 주요 모티프가 되고, 1962년 첫 작품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발표한다. 이후 <암병동>,<수용소 군도>등 발표, 197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나 소련 정부의 방해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다. 1974년 스위스로 이주했다가 1976년 미국으로 망명, 18년간 미국에서 살다가 소련의 붕괴 이후 1994년 다시 러시아로 귀환하여 2008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고단한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90세까지 사셨으니, 참으로 강한 사람이었던듯 싶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여느 때처럼 아침 다섯 시가 되자, 기상을 알리는 신호 소리가 들려온다'(p.7)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독소전쟁 중 독일군에게 생포되었다가 탈출했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8년 째 수용소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슈호프의 하루, 고난과 고통으로 매일매일이 똑같은 수용소의 수많은 날들 중의 어느 하루를 그린다.
수용소의 죄수들은 톱밥으로 채운 매트, 죽지 않을 만큼만 나오는 식사, 시베리아의 추위를 견뎌내기엔 너무나 부실한 옷을 입고 영하 20~30도의 추위 속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중노동에 시달린다. 슈호프는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영양실조로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도 살아남았다. 또한 간수들의 횡포와 동료 죄수들의 고발은 수용소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한다. 이런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슈호프는 과거 반장이었던 쿠조민의 말을 수용소 생활의 신조로 삼고 있다.
"이봐, 이곳에서는 법칙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밀림의 법칙이라는 거야. 그러나 이곳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지. 수용소 안에서 죽어 가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남의 빈 그릇을 핥는 놈들이고, 맨날 의무실에 갈 궁리나 하는 놈들, 그리고 정보부원들을 찾아다니는 놈들이야."(p.9)
슈호프는 죄수에게 가장 큰 적은 '옆의 죄수'이며 '모든 죄수들이 서로 시기하지 않고 단결할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p.190) 생각한다.
그는 매일같이 인간성을 시험당하는 수용소에서 이런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는 그 누구보다 강하지만 남을 짓밟는 타락한 인간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살아남되 정직하게 살아남고자 하는 그의 신념은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비록 겉모습은 머리는 거의 다 빠지고 이빨도 반 밖에 남아있지 않은 슈호프이지만 정신만큼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다.
8년간의 수용소 생활 동안 그는 뇌물을 줘 본 적도, 받아 본 적도 없다. '쉽게 번 돈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믿는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이든 남보다 못하진 않는다고 자부'한다. 때로는 간수들을 속여 죽 한 그릇을 더 먹기도 하지만 동료 죄수들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
슈호프는 동료 죄수가 궐련을 피는 모습을 보며 담배 한 모금이 자유보다 더 간절하지만, 자신의 자존심을 버려가면서까지 남의 입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를 거부한다.
그는 험난한 수용소에서 자신만의 생존 노하우를 터득한다. 그것은 매 순간 무엇을 하든 그 순간에 집중하여 그 안에서 작은 즐거움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그의 능력은 동료와 함께 벽돌을 쌓는 작업을 하면서 최고로 발휘된다. 벽돌을 쌓는 순간 그는 오직 벽돌 쌓는 일만을 생각한다. 벽돌을 훑어보고 어디다 어떻게 놓아야 할지 재빠르게 판단하면서 나름 작전을 세워 최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작업이 끝난 후 자신의 결과물을 보며 만족해하는 그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슈호프는 지금 경비대가 군견을 데리고 수색을 하러 나온다 해도 쌓아 놓은 벽을 살펴보지 않고는 그냥 갈 수가 없는 성미다. 그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쑤욱 훑어본다. 그만하면 괜찮다. 이번엔 벽을 따라서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가며 휜 곳이 없나를 살핀다. 그의 눈 한쪽은 수준기나 진배없다. 반듯하다! 솜씨가 예전 그대로다. (p.165)
이런 그의 집중은 먹는 순간에도 잘 나타난다. 식사 시간은 슈호프에게 '경건한 시간'(p.219)이다.
슈호프는 모자를 벗어 무릎 위에 얹는다. 한쪽 국그릇에 담긴 건더기를 숟가락으로 한 번 휘저어 확인한 다음, 다른 그릇에 담긴 국도 똑같이 확인한다. 웬만큼은 들어 있다. 생선도 걸려든다. (...) 우선, 한쪽 국그릇에 담긴 국물을 쭉 들이켠다. 따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가자, 오장육부가 요동을 치며 반긴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슈호프는 모든 불평불만을 잊어버린다. 기나긴 형기에 대해서나, 기나긴 하루의 작업에 대해서나, 이번 주 일요일을 다시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나, 아무 불평이 없는 것이다. 그래, 한번 견뎌보자. 하느님이 언젠가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테지! (p.220)
너무나 풍족한 음식에 살이 쪄서 고민인 우리는 뼈와 지느러미가 들어간 멀건 생선국을 먹으며 이런 만족을 느끼는 슈호프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당장의 한끼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삶에서만 나오는 그 어떤 숭고한 의지를 슈호프에게서 느꼈다. 그 강인한 생명력과 지혜는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인간에게서만 발현되는 것이며, 특히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선한 본성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슈호프는 감옥과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내일이나 내년에 무엇을 할지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간수들이 다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대신 '어떻게 하면 스프 한 그릇을 더 먹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벽돌을 더 완벽하게 쌓을 수 있을까, 빵을 지금 먹어야 하나 놔뒀다 점심 때 먹어야 하나,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라도 더 벌 수 있을까' 생각한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 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 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 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p.261,262)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슈호프에게 고통에서 오는 분노나 절망은 찾아볼 수 없다.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스탈린 체제의 전체주의에서 체제의 부속품이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슈호프, 과연 나라면 슈호프처럼 해낼 수 있을까...
<피에 젖은 땅>을 보다가 읽은 <이반 데니치, 수용소의 하루>는 순한 맛이었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슈호프의 모습엔 절망보다는 희망이 보인다. 그러나 <피에 젖은 땅>의 역사 속 수천만의 슈호프에겐 희망이 안 보였다.
작가 솔제니친은 스탈린 전체주의가 저지른 범죄를 고발함과 동시에 그런 고통 속에서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깊은 연민과 애정을 느끼고 자신의 문학 속에서 그것을 형상화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이 세상의 모든 억압받는 약자에게 솔제니친이 보내는 편지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