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사형제도의 무력함을 이야기한다.
범죄자에게서 진정한 사죄를 받아낸다는 의미에서는 사형제도의 무력하다.
사형수 히루카와에게 살인은 과거의 일이고 사형은 단지 자신의 운명일 뿐이다.
사형수 히루카와에게 살인과 사형은 별개의 문제이고 그에게 어차피 죽음은 정해진 것이고 사형은 누군가 죽을 날을 미리 정해준 것일 뿐이다.
사형수 히루카와에게 유족들이 얻고 싶었던 '사죄의 마음'은 사형이라는 벌로서는 얻을 수 없었고 사형은 그러한 사죄의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없애버렸다.
사형이라는 형벌은 반드시 살인자에 대한 사죄의 마음을 얻어내기 위해서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첫째 살인이라는 범죄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논리에 따라 또다른 죽음을 원하는 것이다.
둘째 재범을 방지코자 하는 것이다. '공허한 십자가'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카하라의 딸은 모범수로 출소한 살인자 히루카와에 의해 살인되었다.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은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살인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 '사실' 위주의 판단뿐만 아니라 관련자들에 대한 '내면'적인 문제도 함께 생각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살인자는 살인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환경과 상처에 대한 조사가 필요할 것이고 이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살인자의 내면적인 치유가 병행된다면 재범의 위험도 줄어들 것이다.
니시나 후미야, 이구치 사오리 이들은 21년전 중고등학교 시절 사랑에 빠지고 아기를 낳게 된다. 하지만 두려움에 휩쌓인 이들은 그 아기를 살인하고 기억속에 묻는다.
이들의 문제와 대처방식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문제와 만나면 먼저 원인을 찾고 그리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원인을 찾을 때 두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고, 둘째는 외부에 전가하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용기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의 무게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전가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지만 쉬운 일이다. 편안한 일이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문제로 인해 비난받는 위치가 아니라 비난하는 위치에 설수도 있다. 그 문제 때문에 내가 고통받고 있으니 그 문제의 책임을 앞에 있는 네가 져야한다는 것이다.
해결책을 찾을 때도 두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문제속에 주저않는 것이고, 둘째는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문제속에 주저않는 것은 너무도 편한 일이다. 그냥 앉아 있으면 된다. 그러면 많은 위로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위로는 공허한 것이고 도움이 계속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책임은 스스로가 져야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결국 길은 열릴 것이고 그러한 문제와 해결 끝에는 더 성숙한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가장 좋은 케이스는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문제와 대면한 순간은 어쩌면 최악의 상황이다. 때문에 앞으로는 좋아질 일밖에 없다. 즉 희망적인 것이다.
다만 우리는 문제와 대면한 그 순간의 고통이 두려워 문제를 대면하지 못한다.
어린아이들은 몸이 아프면서도 주사를 맞지 않으려고 한다. 주사바늘에 대한 시각적인 공포와 그리고 주사바늘이 몸속에 들어올 때의 따끔함이 싫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 주사를 맞는 일은 생각처럼 그리 힘든 일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할 뿐이고 이 결단은 미래의 더 큰 고통에서 우리를 해방한다.
후미야와 사오리도 좀더 일찍 용기와 결단을 했더라면 그들의 삶은 행복했을 것이다.
영아살인 후 후미야(남성)는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회에 공헌하고자 노력하고 임신후 자살을 시도하는 여성과의 결혼까지 한다.
사오리(여성)는 자기 주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죄에서 찾으며 세상가운데 자포자기 한다.
누가 더 옳다고 말할 수 없다. 가장 좋은 것은 문제가 발생한 21년전에 용기있게 맞이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21년이라는 긴 세월을 고통 속에서 삶을 망가트린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이 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자수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들의 결정에 대해 찬성에 한 표를 던진다.
우리에게 결단의 용기를 발휘할 기회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
문제가 발생한 그 순간 결단하지 못했더라도 21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그 결단은 할 수가 있다.
이야기에는 '하나에'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하나에는 후미야의 아내이다.
하나에는 후미야와 결혼 전 또다른 남성으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임신까지 한 상태에서 자살을 시도하다가 후미야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하나에는 불행한 여성이다. 어머니의 죽음과 도벽이 있으면서 외도까지 일삼는 무직의 아버지...
하나에는 이런 불행한 가정에서 탈출했지만 결국 한 남성에게 모든 돈을 사기당하고 그의 아들까지 임신하는 불행 속에 빠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하나에의 부주의와 어리석음을 질책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한번더 생각할 것은 하나에의 불행은 당시 하나에가 살고 있던 사회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성은 공장에서 적당히 일하다가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사무직 남성을 만나서 결혼하고 직장을 적당히 그만두는 것이 당시 사회모습이었다.
하나에는 이러한 여성에게 부여된 사회적 틀 속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속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한 강박관념은 하나에의 판단을 흐리게 했고 결국 잘못된 결정을 하게 했다. 하지만 결정에 대한 책임은 항상 스스로가 지는 것이다.
성숙한 사회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피부색이 어떻든, 학력이 어떻든, 빈부의 차이를 떠나서 모두에게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는 사회다.
나의 인생의 길와 종착역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재미없는 삶일까?
가끔 주위 직장 선배들을 보면서 너무나 동일한 인생을 살고 있구나 하고 느낀다. 그리고 그들 속에서 미래의 나의 모습도 함께 발견하면서 허탈함을 가지게 된다.
성숙한 사회는 하나에와 같은 문제를 책임으로 인식하고 실제 책임을 지는 사회다.
복지제도나 각종 사회 부조리를 개선코자 하는 노력들이 이러한 류일 것이다.
우리 자녀들에게는 좀더 나은 사회가 부여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