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서 실패한 여자 세릴 스트레이드, 그녀는 무너진 삶을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을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걷기를 통해서 찾고자 한다.

어쩌면 인생은 PCT 걷기와 비슷하다.
정상을 향해 오르다가도 다시 깊은 계곡으로 내려가고, 끝없는 평지를 걷다가고 갑자기 숲이나 큰 강 등을 만나기도 한다.
세릴이 PCT의 종점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이런 경험들을 통해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란 얼마나 예측 불허의 것인가. 그러니 흘러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둘 수밖에.(본문중)"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어머니라는 끈으로 잘 유지되고 있던 세릴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있던 끈이 풀어져 버린다.
완전히 무너진 그녀는 무분별한 섹스와 마약에 빠져서 결혼에도 실패하고 극도로 타락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런 그녀가 전혀 산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그리고 체력도 없는 그녀가 혼자서  PCT 4,285km를 걷기 시작한다.

"다시 배낭을 메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방법이 하나뿐이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언제나 그랬다. 그냥 계속해서 길을 걷는 것뿐.(본문중)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고난을 맞이하게 된다. 때로는 깊은 절망에 빠져서 생을 포기하고 싶기도 하다. 
죽음이후의 삶이 종교적인 관점에서 천국이나 지옥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단지 '무'로 돌아갈수도 있을 것이다.
극한 고통의 순간에는 사후의 세계가 무엇이든 그냥 지금 이 순간에서 도망하고 싶을 뿐이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결정은 도박이다.
사후에 더 고통의 순간이 나를 기다릴 수 있게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과 남은 가족에 대한 걱정이 그나마 극한 고통 속에서도 자살을 막아주는 공로자들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그보다 더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가장 최악의 일은 이미 벌어졌으니까.(본문중)"

가끔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을 때 이렇게 세릴과 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한다.
지금은 최악의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좋아질 일 밖에 없다.
그러니 기뻐하자.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왔어. 언제나 누구의 딸, 엄마, 그리고 아내였지. 나는 나 자신이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어.(본문중)"

우리는 '자신의 삶'을 산다고 하지만 결코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
부모, 형제, 배우자, 자녀, 직장동료, 상사 등등 세상에서 연관되어진 많은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살고 있다.
더 나아가 교육을 통해서 또는 TV, 신문 등등 다양한 대중매체를 통해서 소속된 국가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살고 있다.
더 나아가 세계 정의 등등 범국가적인 요구에 따라 살고 있다.
더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라 무엇인가하는 존재 자체에 대한 요구에 따라 살고 있다.
이 속에서 '나'는 없다.

개인적으로 산 속을 걷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 산행을 계획하고 있다.
물론 혼자서 가고 싶고 힘든 길을 선택할 것이다.
내 속에 깊이 배여있는 지독한 냄새나는 찌꺼기들을 모두 땀과 함께 배출하고 싶다.
마지막 내려오는 길에 계곡물에서 이 찌꺼기들을 남겨 놓고 올 생각이다.
산이 욕하지는 않을 것같다. 
아주 보잘것 없는 나란 존재보다 산은 훨씬 대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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