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다가 보면 세상과 잠시 이별하고 주변의 작은 것들에서 즐거움을 찾게 된다.
그러다가 그 작은 것보다 더 작은 자신을 만나게 된다.


'인간의 삶이란 한갓 광기요, 세계는 알맹이가 없는 한갓 수증기라고 여겨질 때, <경박한> 주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내 맘에 드는 일은 없었다.'(본문중)


만물의 창조주나 수천만년을 유지하고 있는 자연을 보면서 겨우 100년남짓 살아가는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미약한 것이지......
왓치맨이란 영화를 본 적있다.
이 영화에는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수퍼영웅이 된 사람들과 사고에 의해 실제 신과 같은 존재가 된 닥터 맨하튼이라는 반신이 등장한다.
수퍼영웅들은 스스로를 절대자의 위치에 올려놓고 세상을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더 나아가 닥터 맨하튼에 도전한다.
닥터 맨하튼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인간 중 가장 똑똑할지라도 나에게는 그냥 똑똑한 인간일 뿐이다.'
최근 200~300년 사이 인간의 과학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이제 창조주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하지만 창조주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이 이룩한 세계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증기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한 인간의 존재가 그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점진적일 수도 있다. 저 자신 속에 너무나도 깊이 꼭꼭 파묻혀 있어서 도무지 새벽 빛이 찾아들 것 같지가 않아 보이는 어린아이들도 있다.'(본문중)


우리가 누군가를 알아갈 때 그의 참모습은 점진적으로 드러난다.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고 그것을 인지한 우리들은 그만큼만 그를 조금씩 조금씩 이해하고 알아간다.
물론 우리가 가진 가치관이나 편견이나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을 통해 가지게 된 사전지식으로 인해 조금더 이해가 빨라질수는 있겠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를 제대로 알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막> 욕망이 만족되려고 하는 순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본문중)


인간의 '자기사랑'은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필요선이면서 또한 인간을 파멸시키는 절대악이다.


좀더 깊숙이 들어가서보면 인간의 삶은 유치하다.
자기사랑의 기준에 의해 스스로를 존재케 하기 위한 결정을 지속하면서도 때로는 덧없는 순간의 쾌락을 위해 유치한 선택을 하게 된다.
욕망충족의 쾌락은 그것이 달성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극에 이른다.
실제 그 쾌락을 경험할 때는 이미 쾌락의 덧없음을 깨달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욕망이 만족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의 절정은 마치 마약과도 같다.


'이제 그는 이 세상 어디에서나 화해한다. 모든 곳에서 그는 영접받고 축복받을 것이다. 저를 맞아들이는 장소의 형태와 결합하여 차츰차츰 그 형태와 분간할 수 없도록 하나가 되어 버릴 것이다. 완강한 저항이 철저한 복종으로 변했다가 어떤 새로운 생존 속에서 다시 반항으로 소생할 것이니 이 소용돌이와 평화의 교차가 우주적인 삶을 구성한다.'(본문중)


태초에 인간은 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땅에 대한 욕심이 많다. 인간의 역사는 땅싸움의 역사였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도 땅을 좋아하는 인간은 땅을 그냥 두지 않는다. 마치 원수인 것처럼, 땅이 인간에게 몹쓸 짓이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땅을 괴롭힌다.
남산 산책을 갔다. 분명 산에 갔지만 흙을 밟을 수는 없었다. 옆에서 누군가 '그냥 두지' 하고 말한다.
흙을 무척이나 그리워하면서도 인간이 만든 문명은 우리와 흙을 강제 이별시킨다.


우리가 다시금 그곳으로 돌아갈수 있는 방법은 '죽음'이다.
'완강한 저항'이 죽음을 통해 흙과 하나되는 '철저한 복종'이 된다.
어쩌면 흙과 하나되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 인간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렇게 흙과 분리되려고 하는건가?


하지만 죽음은 결국 우리를 그 자리로 돌려놓는다.


흙으로 돌아간 인간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것이다.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본문중)


인간은 항상 외롭다.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항상 자신의 반쪽만 보여주기 때문에 반쪽짜리 결합만 있다. 그래서 결혼을 해도 인간은 계속 외롭다.
정작 중요한 것은 숨겨진 반쪽이다. 하지만 그 숨겨진 반쪽을 함께 할 누군가가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만약 그(그녀)가 있다면 내 생명을 던지리라.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출발할 때면 항상 무언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과연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여행은 우리에게 피곤함과 금전적 부담과 시간의 낭비를 준다.
그런 것들을 감수하면서도 왜 우리는 얘타게 여행을 가려고 하는 걸까?


우리는 자신을 찾고 싶어 한다. 큰 기계속에 작은 부속품으로 살면서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그와 만나고 싶어 한다.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 ~ 그런데 그 <자기 인식>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그 자기 인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여행은 완성된 것이다.'(본문중)


슬픈 것은 그렇게 어렵게 만난 자신은 존재라는 관점에서 너무도 의미없다는 것이다.
세상가운데 돈을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열심을 낸다고 하지만 세상의 존재들 가운데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세상의 많은 존재들 중 내가 가질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냥 존재들이 흘러가는 데로 같이 흘러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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