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개정증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린 덫에 걸린 것이다. 빠져 나갈 수 없는 진화의 덫에...
신자본주의와 자유주의는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가장 이상적인 사상이라는 평을 듣게 된다.
더이상 미국, 유럽 등 서구의
적수가 없어진 시대 상황에서 이들의 사상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평을 듣는 것은 아직도 여전히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국제사회에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냉전시대에는 흑백이 명확히 갈리는 시기였다. 즉 미국을 중심으로한 자유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진영이 뚜렷이 구분되었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더이상의 흑백논리는 무의미하게 되었다. 세계를 두 진영으로 묶어주던 이념전쟁이 끝이 나자 사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나 하랄트 뮐러의 '문명의 공존' 등의 논쟁처럼 냉전시대에 숨숙이고 있던 각 지역의 전통적인 사상과 문화가 그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스타워즈' 시리즈를 빠짐없이 보았다. 주요골자는 우주를 지배하는 '제국'과 '반란군'과의 전쟁이다.
제국은
옷과 비행선 등 모든 것에서 획일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반란군은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복장들, 그리고 다양한 비행선이
등장한다.
로마제국의 정복전쟁영화도 비슷하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의 주제가 한 때는 정의로운 로마군과 야만인들과의 전쟁이었다면 최근에는
로마군의 무자비함과 핍박받는 종족의 투쟁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의 자신들과 익숙치 않은 문화를 인정할 수 없었고 이는 야만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결국 유럽인들에 의해 원주민들의 대학살이 일어난다. 지금 아메리카 대륙은 옛 원주민들의 자취를 찾기가 힘들다.
마치 처음부터 그들의 땅이 아닌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들과 익숙치 않은 것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배격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는 인류가 이동할 때마다 이동한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개조가 이루어졌다고 언급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청교도가 북미에
정착한 이후 인디언과 버팔로가 거의 멸종하고 백인과 소 같은 새로운 인종과 가축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처럼. 이런 일들이 아주 오래전 고대부터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현재 라다크에서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서구는 자신들과 다른 사상과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현
시점에서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현시점에서 가장 우수한 사상과 문화라고 주장하며, '세계화'라는 관점에서 이것들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는냐를 생존의 문제로 끌고 간다.
획일적인 경제시스템, 획일적인 교육, 획일적인 조직문화 등등으로 세계가
물들어가고 있다.
몇일 전 명동거리에서 많은 외국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흰 피부도, 검은 피부도, 노란 피부도 있었지만 모두가 획일적인
옷과, 획일적인 가방과 등등으로 무장해 있었다.
서구문화의 침략이 시작된 이후 라다크는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획일적으로
서구화된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은 라다크를 부끄러워하며 그들의 문화를 잊어가기 시작했다.
라다크의 전통적인 것이 사라지고 서구화된 획일적인
건물과 교육과 문화 등으로 변해갈 때 그것을 발전이라고 말하며 '서구의 화려한 불빛'을 이상형으로 삼고 달려가고 있다.
물론 그 화려한
불빛에 가리워진 그림자를 그들은 보지 못한다. 그리고 서구도 이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가르쳐 준다고 하라도 라다크에는 선택권이 없어
보인다.
라다크에는 '조'라는 라다크의 척박한 환경에 완전히 적응된 가축이 있다. '조'는 농사일에 사용되어지고, 우유를 공급하고,
고기와 연료를 공급하는 라다크에서는 매우 중요한 가축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보다 '소'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소'는 라다크 환경에
맞지 않는 가축이다. 다만 서구의 색깔에는 맞겠지만...
라다크의 전통적인 집들은 라다크 어디에서나 볼수 있는 '진흙'을 이용한다. 하지만 지금은 멀리 다른 지방에서 만들어진 '벽돌'을
수입한다.
라다크의 모든 가족과 이웃들은 자연에서 함께 일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부모와 자녀, 이웃간, 그리고 자연과 융화되어
간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깨어졌다. 서구화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족들은 가족과 이웃을 떠나 도시로 가야했고 자연은 개발을
위해 파괴되어야 했다.
겉보기에는 라다크는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예전의 행복을 잃고 있다. 그들은 행복하고 여유로웠으며 자신들의 문화가
자랑스러웠으며 부족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라다크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그 부족을 채우기 위해 바쁜 일상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더이상 자신들이 자랑스럽지 않다. 도리어 부끄럽다. 저 멀리 서구는 너무도 대단해 보인다. 그래서 그 서구와 닮아가기 위해서 열심을 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이상은 쉽게 오지 않고 결국 다시 좌절하게 된다.
라다크는 더이상 행복하지 않다.
서구에게 라다크는 새로운 정복지이다. 이전에는 물리적인 정복과 정복지의 인종에 대한 청소가 이루어졌다면 현대사회에서는 문화적인
정복과 정복지의 전통문화에 대한 청소가 이루어지고 있다.
라다크에는 반개발기구인 '라다크 프로젝트'가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라다크 프로젝트'는 서구의 정복전쟁에 대한
반란군이다.
세계 곳곳에서는 다양한 반란군들이 활동하고 있다. 포스터모더니즘을 비판하는 각종 저서에서부터 전통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각종
노력이 반란군인 것이다.
반란군의 최종목표는 무조건적인 서구문화에 대한 배격이 아니다.
다만 각 지역별 전통문화와 서구문화의 우수한
면이 함께 융합되어 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라다크 젊은이들이 라다크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라다크를 더욱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토대
위에 서구문화의 우수한 것들이 덧입혀져야 하는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스타워즈:깨어난 포스'에서 제국의 '핀'이라는 군인이 제국의 잔인한 행위들에 염증을 느끼고 제국군의 전투복을
벗고 탈출한다.
제국군에게 전투복 헬멧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헬멧을 벗은 제국군을 본 기억이 몇번 없다.
전편의 최고 악당이면서 주인공인 루크 스카이워커의 아버지였던 '다스 베이더', 새로이 개봉한 깨어난 포스의 악당 '포 다메론', 그리고 제국군
병사이면서 탈출한 '핀'이다.
이들의 공통점을 보면 헬멧을 벗을 때 모두 '악'한 마음이 잠시 흔들린 시기이다. 그리고 '핀'은 완전히
악한 마음에서 탈출했다.
지금 우리는 획일적인 사각형 건물안에서 획일적인 사각형 컴퓨터와 획일적인 사각형 서류를 들고 조직의 목적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의 결과나 그 영향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다만 조직에서 인정받고 승진하고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만이
목적이다.
수많은 제국군이 있었다. 그들도 모두 동일할 것이다. 조직내에서 인정받고 승진하고 풍요로워지는 삶은 누구에게 큰 유혹이고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핀'은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났고, 종국에는 '반란군'에 합세했다.
우리 모두가 지금 삶의 현장을 떠나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실이라고 생각한 것들에 대한 무비판적인 신뢰는
위험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검증과 개혁이 필요하다. 그것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닌 가장 밑에 있는 우리들이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