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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 새잎 / 2011년 6월
평점 :
체르노빌 원전사고
1986년 4월 26일 1시 24분(모스크바 기준 시간)에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폭발에 의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발전소에서 누출된 방사성 강하물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러시아 등에 떨어져 심각한 방사능 오염을 초래했다. 사고 후 소련 정부의 대응 지연에 따라 피해가 광범위화되어 최악의 원자력 사고가 되었다.
오늘날까지 최악의 원전 사태로 기억되는 체르노빌 원전 사태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이 사고로 인한 전체 피해는 제2차 세계대전 끝 무렵에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 피해의 열 배에 달할 정도였다. 당시 사고가 터진 직후 30명 이상의 소방관과 원전 근무자들이 사망했다.
또한 방사능으로 인해 인근 지역의 동식물 생태계가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사고가 터진 뒤 10년이 지나도 작물이 자라지 않을 정도였다.
유럽도 즉각적인 피해를 입었다.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 작물들이 오염되는 사태가 발생했으며, 노르웨이 북쪽 라플란드 지역의 순록 고기 또한 먹을 수 없을 만큼 오염된 것으로 판명되었고, 유럽 공동체는 일정 기간 동안 동부 유럽의 육류 반입을 금했다.
사고가 터진 후, 일부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6500명에서 4만 5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방사능 노출로 인해 암과 같은 질병으로 사망할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그러나 200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사고 후 14년이 지난 시점에서 방사능이 공중위생에 큰 위협을 주었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전체적인 암, 사망률 혹은 인체에 해로운 질병이 증가했다는 과학적인 증거 또한 발견되지 않았다"며 상반된 결과를 내놓았다.
체르노빌 원전 사태 이래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된 RMBK라고 불리는 원전 방식은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에 대한 보안 및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론이 다양하다
후쿠시만 원전사고
2011년 3월11일 발생한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과 곧이어 들이닥친 거대한 쓰나미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수소폭발과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가동 중이던 원자로의 핵분열은 자동으로 긴급 억제됐지만, 전력공급이 중단으로 냉각시스템이 마비돼 핵연료봉이 고열에 노출돼 수소폭발이 일어났고, 방사능 물질이 묻은 수증기가 외부로 유출됐다. 이로 인해 모두 2만여명의 희생자가 양산됐고, 여전히 피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은 전국적으로 17만여명에 달한다. 후쿠시마 원전 폐로까지는 40년 가까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 들어가며 >
“운명은 한 사람의 인생이고, 역사는 우리 모두의 삶이다. 나는 운명을 보존하면서 역사를 들려주고 싶다. 한 사람을 잃지 않도록......”
‘체로노빌의 목소리’는 원전사고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 있었던 인생들의 목소리를 모은 것이다.
< 그들의 목소리 >
프랑스에서 “우리 원전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군사적 핵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던 것이지만, 평화적 핵은 집집마다 있는 전구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군사적 핵과 평화적 핵이 쌍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공범자라는 사실을......
갑자기 적의 모습이 달라졌다!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
“해도 떴고, 연기도 안 보이고 가스 냄새도 안 나는데...... 총도 안 쏘는구먼. 이게 전쟁이야?
버림받은 동물들의 비명...... 자신의 언어로 소리쳤다.
하지만 체르노빌 구름이 나흘 만에 아프리카와 중국에 도착했는데, 체르노빌이 발생한 후에 멀고 가까운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알고 보니 지구는 정말 작은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거기서 영웅은 못 봤소. 미친 사람은 봤지.
과학자들이 헬기를 타고 날아왔소. 고무로 만든 작업복에다 긴 장화, 보호고글까지 완전무장하고. 딱 보면 우주인이었소.
그런데 우리는 어쩌라고?
왠지 그가 나를 보던 것처럼 나를 관찰하시는 것 같아요. 구경하시는 거잖아요. 잘 기억해 두려고. 우리를 대상으로 무슨 실험을 하시나 봐요. 다들 재미있어 해요. 그런 느낌을 떨쳐낼 수 없어요. 그런데 왜 그게 죄가 되는지 아세요? 아이를 낳는 것 말이예요.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잖아요. 행복하고 싶은 게 잘못인가요.
“우리가 어려울 때 조국은 버리지 않는다”~아무것도 몰랐다. 그게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방사선 측정기가 어떤 수치를 보여주면, 신문에는 완벽히 다른 이야기가 실렸다.
제발...... 우리 좀 건들지 마십시오! 떨어지세요! 당신들은 잠시 와서 이야기만 하고 가지만 우리는 여기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삶은 그것 주위를 빙빙 돌고 있어요.
체르노빌 주위를......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단 하나에요. 체르노빌.
체르노빌은 밭에서 감자를 안 캐고 남겨두는 것보다는 안 무서워요.
누구 잘못이죠? 잘못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아닐 거예요!
발전소 소장과 그날 당직을 섰던 기술자들입니다. 과학 잘못입니다.
오늘날의 과학자도 체르노빌의 희생양입니다.
제 생각에 우리는 과학적 연구 대상인 것 같습니다. 다국적 실험실. 유럽의 중심에서. 우리 벨라루스 인구는 1천만 명인데, 200만명 이상이 오염된 땅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매우 자연스럽게 차려진 실험실이지요.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에서. 일본,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미래가 두려워 이곳으로 오는 것입니다.
무언가 듣지도 못한 것이 나의 세상을 파괴했다. 그것이 기어오르며, 내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문과 잡지는 더 무서운 이야기를 쓰기 위해 경쟁한다. 특히 여기에 안 와본 사람이 공포를 더 즐긴다.
영웅, 영웅. 그들은 오늘날 누구일까? 나에게 있어 영웅은 위에서 뭐라 명령하든 환자에게 진실을 말하는 의사야. 그리고 그런 기자, 과학자가 영웅이야.
우리은 세상을 아이처럼 보았다. 유치원생같이 세상을 살았다. 우리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가 체르노빌 후에 더 똑똑해졌다. 성숙했다. 나이를 더 먹었다.
구역으로의 첫 방문. 거기로 가는 길에, 모든 것이 회색 재로 덮여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까맣게 그을린 채로, 그런데 도착해 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두려움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에서 두려움을 구별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반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대였다. 죽음의 낯선 얼굴이었다.
집 안으로 부른다. 어떤 이들은 겁을 냈지만 나는 초대에 응했다. 들어갔다. 밥상 앞에 앉았다. 오염된 샌드위치를 먹었다.
내가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까지 했다.
운명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아내와 아이 둘이 있고 그들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10전에는 내가 그랬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으나 지금은 그 사실이 부끄럽다.
그 저주받은 샌드위치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건 이성이 아닌 마음으로 먹어야 했다.
‘이만큼 안 아팠을 수도 있었을까? 건강할 수도 있었을까?
‘아마도, 조금 더 생각을 했더라면 ......’
‘제대로 된 방호복, 특수안경, 마스크가 필요했어. 그런데 그중에 아무것도 못 받았지. 사실 우리도 안전규정을 따르지 않았어. 생각을 안 했지.’
우리 문화에서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이기주의다. 미약한 정신의 표징이다. 나보다, 내 인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언제나 있었다.
질병에 대한 모든 자료가 ‘기밀’ 또는 ‘고급 비밀’이라는 도장 아래 감춰졌다고 했다. 의학과 학문을 정치로 끌어들였다고 했다.
사람은 영원하지 않지만 고방사능 입자는 죽지 않는다. 사람은 사망 후 1천 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불타는 입자’는 계속 살 것이다. 그리고 이 먼지는 또다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
민족을 배반한 권력이 침묵할지라도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이성에 대한 믿음이 사람을 떠나면, 그 마음속에 짐승 같은 두려움이 들어가요. 그리고 괴물이 기어 나오죠.
젊은 친구들이었소. 그들은 지금 죽어가지만, 자신이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잘 아는 친구들이이오. 그들은 뛰어난 문화 의식을 가졌소. 승리의 문화, 희생정신의 문화......
이제 이들은 없소. 우리 박물관에 있는 서류만 남았소.
우리 마을에는 묘지가 세 개 남아있다. 첫 번째는 사람이 묻힌 오래된 묘지고, 두 번째 묘지에는 우리가 버려 총살당한 개와 고양이, 세 번째 묘지에는 우리 집이 묻혀 있다.
우리는 집까지 장사지냈다.
며칠 동안 텔레비전 앞에 앉아 고르바초프의 연설을 기다렸다. 하지만 권력은 침묵했다.
알파, 베타, 감마 입자도, 방사선 생물학도, 전리 방사선은 물론, 동위원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에게 이런 주제는 딴 세상 이야기였다. 대신 소비에트 인민의 영웅성과 군사적 용기의 상징, 서양 정보원의 음모에 대해 설교했다.
모든 엄마들이 병실이 아니라 화장실, 목욕실에서 울었다. 병실에 돌아올 때는 발랄하게 들어왔다.
“얼굴색이 좋아졌네. 몸이 낫는가 보다.”
“엄마, 나 좀 병원에서 데리고 가줘. 여기 있으면 죽을 것 같아. 여기서는 다 죽어.”
어디서 울어야 하지? 화장실에서?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나 같은 사람들이 다 거기 있는데......
사람이 블랙박스라니......
우리는 우리가 평범하게 산다고 생각하지. 일도 하고, 먹고 살고. 사랑에도 빠지고. 그런데 아니더이다! 알고 보니 우리는 미래를 위해 정보를 기록하던 중이었소.
눈을 떠요. 다시 잠들어요. 또 조용해요. 죽은 것처럼......
‘아르톰, 눈 떠......’
아들이 못 죽게 괴롭혀요.
처음에는 ‘누구 잘못인가?’가 가장 중요했어요. 누군가 탓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에요.
나중에 더 많이 알게 되자,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1년이나 2년 있다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 동안 지속할 거란 사실을 받아들인 지금, 다시 옛일을 떠올리기 시작했어요. 한 장, 한 장 뒤로 넘겨봤어요.
베란다로 나가 아이들 들어 올리고는 “잘 봐! 기억해 둬!”라고 말했어요. 함께 보던 이들은 바로 원자로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어요.
우리는 죽음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우리는 평화적 핵도 죽음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전혀 몰랐어요. 그날 밤 온 도시가 잠에서 깨어자니 못할 수도 있다는 걸......
< 우리의 이야기 >
대한민국은 2015년도 기준으로 4곳(고리, 영광, 울진, 월성)의 원자력 발전소와 24기의 원자로를 가동 중이다. 발전량 기준으로는 세계 6위이며, 회사 단위로는 세계 2위의 원자력발전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이 있다. 원전은 한국 내 전체 전기 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9월 12일 오후 8시 32분 54초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8㎞지역에서 규모 5.8의 본진이 일어난 바 있다. 이는 관측사상 역대 최강의 지진이다. 19일 현재까지 374회의 여진이 발생하고 있다.
대한민국 원전은 울진 – 경주 – 울산 – 부산을 잇는 동해안을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위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