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예술,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흔쾌히 즐기는 이른바 대중예술-영화를 감상하고, 소설이나 만화를 읽으며, TV 시리즈를 보고, 노래를 듣는-을 보면 이들은 현실을 하나의 작품으로 재창조함으로써 세계의 숨은 일면과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어떤가?
세계와 무관한 개념적이고 형식적인 것(예컨대 커다란 사각형이나 줄무늬), 아름답지 않은 것(소변기, 잘린 성기), 예술과 무관해 보이는 것(통조림, 벽에 붙인 바나나)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대미술을 싫어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현대미술의 옹호자들은 현대미술에 '좋은 부분도 좋지 않은 부분도' 있으며, 그에 대해선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럼 역사의 판단이 좀 더 쉬워지도록, 지금부터 현대미술의 좋지 않은 부분을 가려 보면 어떨까.
저자는 이 책에 작품의 감상과 예술가의 가치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가 아니라 역사의 흐름과 무관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논의하고(어떤 작품이 나에게 감동적이라면 그것이 인상주의 작품이든 고전 작품이든 무슨 아무 상관인가?), 고전 예술 양식은 마이너 예술을 피난처로 삼았으며 오늘날 이들이 누리는 성공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일 것임을 지적하였습니다.
아울러 20세기 미술사의 신화를 이루는 '토템'인 뒤샹, 피카소, 개념미술 등의 의미를 다시 살피고, 이들이 생각만큼 견고하지도, 생각만큼 공식적인 역사를 지지하지도 않음을 이야기하고 나아가 피카소나 모네처럼 자신들의 이름이 걸린 아방가르드 운동보다 훨씬 오래 예술계에 남아 계속 활동했던 이들, 아방가르드 운동에 참여했다가 다시 고전 예술 양식으로 되돌아온 이들, 어떠한 아방가르드나 역사적 과정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뛰어난 예술 작품을 남긴 이들을 하나씩 지적하였습니다.
그러고는 공식적인 미술사가 거짓임을 선언하고, 새로운 20세기 미술사를 제시하였습니다.
이 역사에서 예술적 가치는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것이며, 따라서 미술사는 하나의 최종 목표를 향해 점차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적 능력이 계속해서 변모해 가는 과정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화가들이 스스로 주장하는 계보, 화가들이 동시대 후계자들의 작품에서 보았던 계보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철학자나 비평가가 아닌, 예술가들이 직접 쓴 역사를. - page 54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 미술서라 접근했다가 큰코다쳤습니다.
유독 많았던 QR코드는 몰입의 순간을 방해하였었고 '프랑스'에 대해 잘 몰랐기에 이해가 어려웠고 저자의 이야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았으며 무엇보다 낯선 인물과 작품은 그야말로 멘붕이 왔었습니다.
하지만 그랬기에 더 그의 주장에 힘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조국이기에 더 냉철하게 분석할 수 있었으며 예술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비평가나 역사학자가 아닌, 예술가들 스스로가 찬양하고 수집했던 선대 예술가들, 그리고 그 예술가들의 작품을 다시금 사랑하고 찬미했던 후대 예술가들로 이어진다는 것을.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 - page 113
무엇보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저자는 단순 '예술'에서만 그치지 않고 전반적으로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제시해 준 점이었습니다.
나는 역사의 흐름을, 정확히는 역사가 최종 심판을 내릴 자격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진짜와 가짜, 선한 것과 악한 것은 시대마다 우리 각자가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을 위해 선택하는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우린 최소한 그런 선택이 어떤 변화를 불러오리라 믿고 행동할 수는 있다. 그러니 그렇게 하자. - page 156
현대미술의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신격화에 일침을 가했던 이 책.
'진짜' 20세기 미술사를 구성하는 이들을 알려주었던 이 책.
그렇기에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