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쉬운 독학 이세돌 바둑 첫걸음 ㅣ 가장 쉬운 독학 이세돌 바둑
이세돌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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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AI 열풍이 한창 시작되었을 무렵 알파고라는 이름의 바둑 인공지능과 상대한 인간 기사로 (이전에도 유명했지만) 더욱 유명해진 이세돌 전(前) 프로기사가 쓴, 바둑책이다. 뜬금없이 바둑책을 손에 든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가끔 수학책이나 물리학책을 손에 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우연히 바둑에 관한 책이 눈에 띄었다.


사실 나는 온갖 잡기에 능한 게 없는데, 바둑은 전혀, 장기와 체스는 겨우 기물을 움직이는 법을 아는 정도고, 몸을 사용하는 것들, 예를 들면 많이들 하는 당구라든지, 볼링이라든지 하는 것도 즐기지도 않고, 당연히 잘 하지도 못한다. 가끔씩 바둑채널에 대국을 하는 걸 켜 놓긴 하지만, 뭘 알아서가 아니고 그냥 그 조용한 분위기, 가끔 나오는 차분한 해설 같은 걸 화이트 노이즈로 삼아서 다른 일을 하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 나이에 바둑을 배워봐야겠다 그런 건 아니고, 그저 바둑이 어떻게 하는 건지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물에 들어가는 걸 극도로 싫어하지만, 백과사전을 읽으며 수영을 어떻게 하는지, 경영의 국제 규칙과 규격 같은 건 습득했던 것처럼). 또, 온갖 전략과 전술이 난무하는 게임 자체가 내 취향이기도 했고.





이 책은 이세돌이 말 그대로 바둑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기초적인 규칙들과 전술을 설명해 주는 내용이다. 딱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 기본적인 용어들에 관한 설명도 있고, 집이란 게 뭔지, 상대의 돌을 잡는 방식, 어떻게 내 돌을 살릴 것인가 등등. 각각의 설명마다 컬러로 된 기보가 함께 등장해서 이해를 돕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책에 이 부분이 빠지면 곤란하다. 곳곳에 독자에게 생각해 볼 질문을 던져서 방금 배운 것을 실제로 써 먹어 보게도 하고.


물론 이 한 권의 책을 봤다고 해서 바둑에 대해 뭔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긴 힘들다. 책에서 예시된 건 대국 전체가 아니라 부분적인 모양이고, 그게 전체 대국에서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는 한참 더 공부가 필요할 게다. 그래도 뭐든 제대로 즐기려면 먼저 어느 정도 알아야 하니까.


퍽 재미있어 보이긴 하는데, 이걸 좀 더 이해하고, 그 깊은 맛을 즐기기 위해 들여야 할 시간이 어느 정도나 될지 가늠이 안 된다. 정확히는 내가 그 정도의 시간을 지금 투입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읽는 동안 잠시 머릿속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책이다. 중간 중간 이세돌 개인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고, 책 말미에 부록으로 붙어 있는 한국 바둑 계보도 재미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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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가맹점을 누비던 베테랑 영업사원이 아내의 바통을 이어받아 기독교 출판계에 뛰어들었습니다. 8년 차 마케터 정진혁 부장님이 들려주는 기독교 출판의 민낯과 희망! 베드로서원은 왜 5개의 출판사를 인수했을까요? 왜 직접 책 보따리를 싸 들고 대만으로 향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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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1킬로그램당 3,400리터의 물

(전 세계 농작물 생산에 드는 물 총량의 21%)을 쓴다.

또한 불필요한 (건강에도 좋지 않은) 식품첨가물인 설탕의 경우는

1킬로그램에 1,500리터의 물이 들어간다.

그런데 채식주의 사이트의 차트에는

웬일인지 이런 흔한 품목이 빠져 있다.


- 니콜렛 한 니먼, 『소고기를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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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단순히 “누가 먼저 공격했는가”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이 땅에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 영국의 위임통치, 시오니즘, 홀로코스트, 이스라엘 건국, 중동전쟁, 난민 문제, 인티파다,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분리라는 복잡한 역사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적 흐름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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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교회가 온다 - 교육운동가 송인수의 평신도교회 17년 이야기
송인수 지음 / 잉클링즈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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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말하는 ‘평신도교회’란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회중교회/조합교회처럼 교회에 목회자를 따로 두지 않고, 교회 구성원들이 자체적으로 예배(당연히 설교도 포함된다)와 교회운영을 하는 형태는 이미 많이 있어 왔다. 다만 이런 형태의 교회가 제법 큰 교세를 이룬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형태라 생소하게 느낄 수 있다.


물론 약간의 차이도 있어 보이는데,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평신도교회’는 여기에 가정교회의 모델까지 융합시키는 이미지를 그리는 듯하다. 한두 가정, 많아야 예닐곱 가정 정도의 작은 모임을 이상적으로 보고 있다.


기성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던 저자가 이런 새로운 모델의 교회를 시작한 건, 역시나 어떤 불만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에는 이 부분이 굳이 자세하게 언급되지는 않는데, 문맥 상 교회 재정 사용의 방향성이라든지, 조직 운영의 한계, 그리고 목회자의 자질 문제도 어느 정도 있지 않았나 짐작된다.


책에서 저자는 평신도교회 모델이 이른바 ‘초대교회의 정신’을 좀 더 잘 구현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기독교 초기 역사의 몇몇 장면들을 언급하기도 하고,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강조도 보인다.





다만 저자의 이런 주장들은 명백한 한계가 보인다. 우선 목회자가 없다고 해서, 저자가 불만을 느끼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목사가 되기 위해서 받은 훈련과 교육은 간단히 대체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또, 평신도들 가운데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학 시절 우연히 그리스도의 교회 계통의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상대는 내가 신학생이라는 걸 모르고서 초대를 한 것 같은데, 가보니 한 대학교의 빈 강의실에서 몇몇 대학생들이 모여 예배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 예배의 진행은 선배로 보이는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남학생이 이끌고 있었다. 흥미가 생겨서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게 조금 날카로웠던지 그 학생은 약간 흥분한 듯 했고, 그대로 인연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 때 내가 물었던 질문 중 하나는 이랬다. 신학을 따로 공부하지 않은 분이 설교를 하신다고 했는데, 그러면 그분이 신학적을 일탈하게 되면 누가, 어떻게 교정할 수 있는가. 모든 걸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는 건 그 자체로 나쁜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아는 수많은 이단들도 다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가 그 중 한 명이 될 거라는 말은 아니지만, 처음엔 좋게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어떻게 길을 잃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또, 이런 식의 환원주의 비슷한 논지를 주장하는 분들은 교회의 역사가 마치 처음 1세기 정도 제대로 진행되다가 수백 년(또는 천 년 이상) 길을 잘못 들었고, 이제야 (본인에 이르러서) 다시 제 길을 찾은 것처럼, 지나치게 단순화된 역사 모델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같은 사건을 언급하면서, 뭔가 교회에 본질적인 문제가 일어났던 것처럼 설명하기도 하고.


이런 몰역사적 관점은 하나님께서 지난 2천 년 동안 교회를 통해서 이루신 일들을 너무 쉽게 무시하는 오류다. 교회의 조직은 나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고민하고 도출해 낸 결과물의 집합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형식은 현실에 맞춰서 끊임없이 개선되고 변해야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역사적인 적층물 위에 서는 것이지, 우리가 당장 사도행전의 시대에서 이어지는 게 아니다.





조금 비판적인 리뷰가 되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그리고 실천하는 교회 모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회가 반드시 어느 한 가지 표준 모델을 따라야 하는 건 당연히 아니고, 예배의 형식도 마찬가지다. 이미 ‘개신교’로 분류되는 많은 교회들 사이에도, 나라별, 지역별로 예배의 모습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게 사실이니까. 당장 우리의 엄숙한 장로교회의 장로님들은 미국 흑인 침례교회의 경쾌한 예배에 쉽게 어울리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 중 하나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저자가 말하는 평신도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해답은 당연히 아니고, 어쩌면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가 보이는데 그걸 해결하기 위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일종의 직무유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교회의 일원이라면,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고치기 위한 노력을 할 의무도 있는 법이다.


시종일관 정중하면서도, 차분하게 자신이 선택한 길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 저자의 인격이 짐작된다. 책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일종의 설명/변호적 내용이라 방어적 논리가 좀 보이긴 하지만, 후반에는 실제로 저자의 예배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스크립트가 실려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다양한 고민을 하면서 읽고, 토론해 볼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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