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기쁨으로 시작한 교회 봉사는 왜 어느 순간 그만둘 수 없는 의무가 될까요? 예배만 드리고 싶다고 말하면 믿음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고, 새벽기도에 참여하지 못하면 영적으로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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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교회, 들어오면 숨막히고 나가면 그립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봉사자의 소진, 늘 하던 사람에게 일이 집중되는 교회 구조, 새벽기도를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 문화, 그리고 목회자와 성도 모두에게 필요한 쉼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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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은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자발적인 순종을 회복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사람을 지치게 하는 곳이 아니라, 지친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공동체가 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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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 ㅣ 하나님 설계의 비밀
티머시 R. 제닝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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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쯤 이 책의 시리즈 중 하나였던 다른 책을 읽었었다. 그 책의 핵심 키워드는 “마음”이었는데, 이번 책은 “뇌”다. 영어로 된 원제를 보면 “The God-Shaped Brain”이니 우리말 제목이 크게 다른 느낌은 아니다.


그리고 원서에는 “How Changing Your View of God Transforms Your Life”라는 부제가 함께 붙어 있다.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관점이 어떻게 당신의 삶을 바꾸는가라는 말인데, 이 책의 내용을 아주 적절하게 설명한다. 책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 우리의 뇌에, 생각에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우리 삶을 망가뜨린다고 반복해서 지적한다.


전반적으로 보면 앞서 읽었던 책과 비슷한 논조를 갖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뇌’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 책은 여러 장에 걸쳐서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던 실제 환자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그리고 저자가 그들에게 어떤 신앙적 조언을 해주었는지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책 표지에 “이 책의 사례는 모두 실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읽었던 책에서 비판점은 기독교를 너무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정신과 의사가 실제 환자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고안되고 쓰였다는 정황을 놓친 것 같다.


확실히 기독교 문화가 더 일상적인 미국이니 만큼, 여전히 매우 보수적인 신앙관 속에서 종종 압제적인 상황에 처하는 이들도 많은 듯하다. (이즈음 우리나라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여기 나온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을 할 정도로 “경건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든 것을 이분법 적으로 나누는 건 불가능하다. 흔히 “죄”라고 말하는 것들에도 구체적 정황으로 들어가면 고려해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상황에서 경직되고 정통주의화 된 기독교 안에서 자란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신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엄격한 관점을 지니고, 죄책감이나 수치심에 빠져 심각하게 삶의 질서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충분히 나오게 된다. 저자의 책들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한 가지 약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의 책을 너무 일반론적으로 읽으려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단지 우리의 생각과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 건강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흥미롭다. 마음을 뇌의 특정한 부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보는 건가 하는 구절이 몇 군데 보인다. 이른바 ‘육체와 마음의 연결점’이라는 오래된 철학적 주제에 대해 저자는 어떤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부분에서 저자는 정신과 의사라기보다 목회상담을 진행 중인 목회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지는 모르겠다.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기독교적 전제를 갖고 임하는 것과, 목회자가 할 만한 일을 하는 것 중. 물론 이 또한 일부 목회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신자들을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눌러둔 결과겠지만.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견해, 그 중에서도 그분을 무서운 심판자이자 처벌자로만 인식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해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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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지나간 세월에 담긴 다가올 날들을 위한 통찰
문예춘추 편집부 지음, 이미경 옮김 / 베가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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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 책의 제목과 비슷한 제목을 가진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제목의 책이었는데, 문득 리뷰를 쓰려다 같은 출판사에서 낸 시리즈물인가 싶었지만, 웬걸 출판사 이름이 전혀 다르다. 물론 두 책 모두 일본인이 쓰거나 기획한 책이지만 별 상관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검색하면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 하나. “~는/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무척이나 많다. 이 문장의 주어 자리에 들어가는 것들로 독서, 심리학, 시간, 집중력, 독학, 고집, 불안, 법, 심지어 복음까지 있다. 어지간히 무기가 고픈 시대인가 보다. 무기는 기본적으로 경쟁, 싸움을 위한 도구인데, 이렇게 여기저기서 무기를 찾으려고 하는 시대는 평온한 시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이 책은 그 무기를 역사에서 찾는다. 역사가 어떻게 무기가 될 수 있을까? 흔히 말하는 “역사의 교훈” 같은 것을 이르는 듯하다. 다만 역사라는 건 그것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그 해석이 크게 달라지곤 해서, 누가 그것을 읽느냐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모두 스물 세 명의 기고자들의 글을 엮은 이 책의 경우, 각각의 기고자들의 성향을 분석할 수는 없고, 이를 모아 낸 문예춘추라는 출판사(이자 월간지 이름)에 집중해야 할 것 같은데, 조금 찾아보니 일본의 유명한 우익 출판사라고 한다. 다만 모든 글에서 우익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건 아니고, 사안을 ‘다르게 보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부각하기’의 과정에서 다분히 일본 중심적으로 역사를 읽고 있다는 느낌은 종종 받게 된다.


예컨대 근현대를 다루는 파트에서 미국의 민주당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주제로 쓴 글을 보면, 과거 민주당이 노예제를 옹호하던 정당이었으나 교묘하게 과거를 숨기고 있다(!)면서 민주당 정권을 인종차별 정권이라는 식으로 강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그 말미에는 두 개의 원자폭탄을 배치한다. 문제는 여기 어디에도 일제가 당시에 저질렀던 전쟁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점. 물론 글의 논지가 미국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긴 하지만, 일본은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을 받고 원폭의 피해까지 입은 피해자로서만 서술된다. 전형적인 우익적 논설이다.


고대 로마 제국의 멸망을 다루는 글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이민족의 수용에서 찾고, 이를 현대의 난민 문제와 연결시키는 시도도 보인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형식적, 내용적 유사성이 있긴 하지만, 중원을 지배한 수많은 이민족들이 결국 한족에 동화되었다는 점과 비교하면서 중국은 문화적 가치가 민중 전체에게 공유되었지만 로마는 그렇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리는 건 조금은 성급한 면이 있지 않나 싶다.


또 종교와 관련된 내용도 기본적으로 유물론에 기초해 접근을 하니 피상적인 고찰만 나올 뿐이다. 애초에 애정이 없는 대상에 관해 쓴 글은 재미있기도 어렵다. 로마가 예수의 처형 이후 그 제자들이 시작한 신앙운동(기독교)의 의미를 깨닫고,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의 대립을 조장하기 위해 은근 사도들의 활동을 지지한 것 같다는 주장은, 당시 아직 기독교와 유대교의 분화가 유대인들 내부에서도 확실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생각해 볼 때 그다지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니다.





그래도 꽤 흥미로운 통찰도 보인다. 한 필자는 로마 교회와 과학 연구 사이의 긴장만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자연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집중해왔음을 근거로 실제로는 과학 연구에 상당한 진전을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19세기 중후반 영국과 중국(청)의 관계에 대한 고찰에서는 두 나라의 관계를 단순히 자유 민주 vs 권위 독재, 혹은 제국 vs 저항 같은 이항 대립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서는 충분하지 않다고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페르시아와 로마, 당, 이슬람 제 왕조들, 몽골 등의 번영을 이룬 대제국에서 공통점을 ‘소수파’의 지배로 보는 점이 흥미롭다. 상대적으로 소수의 지배층이 통치를 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관용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고, 피지배 계층에서도 신분이나 출신을 크게 따지지 않고 다양한 인물들을 관료로 끌어올려 사회 전체에 유익이 되었다는 것. 물론 지역적으로 예외도 있었지만, 다수파가 전부를 차지하는 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급의 고착화와 부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 사회적 불안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점은 오늘날에도 기억해 둘 만한 부분이다.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잘 걸러서 읽으면 나름 유익한 부분이 있을 책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교양 지식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누어서 쓴 글이니 만큼 무게감도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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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네가 어려움 없는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네가 직면하는 어려움이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가 된 일에 반드시 따르는 어려움이기를 바란다.

그런 어려움을 감당하려면 많은 친구가 필요할 거야.

이 세상에서 친구보다 더 귀중한 선물은 없음을 네가 발견하면 좋겠구나.

우정에는 시간이 들지. 서로를 알게 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거든.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고 믿는 세상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친구가 되는 데 필요한 모든 시간을 주셨단다.

서로 친구가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법을 배우게 돼.


- 스탠리 하우어워스, 『덕과 성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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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을 차별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겪는 차별의 현실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보수 교단에 속한 한 목사는 여성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모르고 있던 경험들을 마주했습니다.


구름책방의 새 시리즈 〈책방에서 논문 읽기〉 첫 시간입니다. 논문 저자인 나연수 목사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드러내는 여성 포용 목회」의 서론을 읽습니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역할 분담,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관계, 차별을 개인의 의도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나눕니다. 서로의 우려와 경험을 짚으며, 여성차별이 왜 교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목회의 문제인지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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