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상품권 2만원 주네요..

예전엔 5만원씩 주다가, 1만원으로 바뀌었고, 이젠 2만원을 주는 듯.


맨발의 꿈이라는 영화인데

딱히 별 얘기는 없지만 아무래도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주제를 함께 썼더니

그게 어필을 좀 했나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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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 - Incept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 그의 마음 속 비밀을 캐내 경쟁기업에 팔며 살아가는 코브. 아내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집을 떠나 전전하고 있는 그에게, 사이토라는 인물이 나타나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의 제안은 한 기업가의 꿈속으로 들어가 그로 하여금 물려받은 회사를 분할하고자 하는 생각을 넣어달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한 번의 꿈으로 생각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었기에, 코브는 꿈의 꿈, 나아가 꿈의 꿈속에 다시 꿈을 꾸게 만들어 대상의 무의식 깊은 곳까지 들어가 그에게 생각을 주입하려 한다. 이를 위해 꿈속의 세계를 설계할 젊은 건축학도 아리아드네를 영입하고, 다시 한 번 그의 팀이 모여 작업을 시작한다.



 

2. 감상평 。。。。。。。

 

     영화는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프로이트의 견해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나아가 영화 자체의 주요 줄거리가 일종의 '집단 무의식‘에 관한 내용인 것을 보면 융의 이론도 일정 부분 가미된 것 같다. 감독은 나름 이론적 근거는 마련되었다고 생각했을는지 모르지만, 아쉽게도 영화에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꿈 안으로 동시에 의식을 갖은 채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그 은색 상자의 원리가 무엇인지를 도무지 설명을 안 한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영화는 꿈과 과학을 연결시키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표현한다. 모든 것을 과학이라는 오븐에 넣어 익혀야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현대인들의 신경증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논리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경험을 해 보지 않았을까? 한참 어떤 일에 쫓기고 있다가 문득 이게 꿈이구나 하는 인식을 한 후에는 이제 모든 것이 내 의지대로 변하는 그런.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원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짜릿한 경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잘 때 꾸게 되는) 꿈은 꿈과 (내가 원하는) 꿈이 같은 글자로 표기되고 있는 것은 너무나 절묘한 조화다. 어쩌면 옛날에는 이 두 가지가 같은 것이었을지도..

     이 영화의 매력은 바로 그 모든 이들이 꿈꾸는 일을 화면으로나마 현실화시켰다는 점이다.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인물이 될 수도 있으니 멋지지 않은가. 꿈속으로 들어간다는 상상은 감독의 독창적인 창안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이 영화만큼 그것을 생생하게 현실화시킨 것은 없었으니, 그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즐길 만하다.



 

     감독의 연출력은 괜찮은 편이다. 등장인물들은 잔뜩 등장시켜놓고서는 정작 영화 속에서는 그저 병풍처럼 말도 못하고 서 있도록 만드는 감독들이 더러 있었지만, 이 영화의 나름 주조연들이 자기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도록 연출되고 있다. 주된 스토리에 주인공 개인의 보조 스토리도 적절하게 어우러져있고, 영화 속 창조된 꿈의 세상도 꽤나 탄탄해 보인다.

     다만 꿈의 꿈의 꿈이라는 복잡한 스토리는 잠시 딴 생각을 한 사람은 도무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를 만큼 어려움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눈 부릅뜨고 제대로 봐야 한다는 소리. 극의 긴박감을 조성하기 위한 의도인지는 알겠으나 너무 잦은 차원의 변화가 확실히 스토리를 따라가기에 벅차도록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찌르고, 자르고, 상처내고, 죽이는 영화만 쏟아져 나오는 올 여름 극장가에서, 그나마 볼만한 영화였다고 할까. 영화를 보고 한 번쯤 주제토론을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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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지 사랑 믿음의 글들 226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이종태 옮김 / 홍성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무조건적 헌신을 

인간적 사랑에 바쳐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악마가 될 것입니다.

 

1. 요약 。。。。。。。

 

     C. S. 루이스가 말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 저자는 스트로게와 필리아, 에로스와 아가페라는 그리스식의 네 가지 사랑의 구분 개념을 차용해, 이를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해 낸다.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루이스만의 독특한 문체가 잘 드러난다.

 



2. 감상평 。。。。。。。

 

     우리나라 사람들도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과 느낌을 묘사하기 위한 많은 의성어와 의태어들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리스인들도 그 못지않게 어떤 개념에 대한 많은 분화된 어휘들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랑’이라는 말에 대한 네 가지 구분이다. 우리말로는 육친에 대한 사랑(스트로게)과 친구에 대한 사랑(필리아), 이성에 대한 사랑(에로스)과 무조건적 사랑(아가페) 등으로 흔히 구분하지만, 이 단어들에 관한 그런 단정적인 구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감정을 누가 그렇게 칼로 베듯 예리하게 나눌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우마다 구별해서 사용했다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사실 사랑에 대한 그리스식의 구분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은 많다. 자칫 이 책도 그런 뻔한 책 가운데 하나가 될 법도 싶었지만, 역시나 C. S. 루이스는 많은 사람들이 가는 그런 식의 방향으로 책의 전개를 끌고 가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사전적인 정의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기에 대한 기독교적 내용을 재구성해나간다.(루이스가 말하는 애정과 우정, 에로스와 자비가 그리스의 사랑 구분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당연히 저자가 쓴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사랑에 대한 네 가지 구분을 해 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네 가지가 각각 어떻게 작용해 나가며, 또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리고 (흔히 하는 오해인) 사랑은 무조건 옳은 것이라는 생각이 어떻게 파괴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 지, 사랑의 부작용에 관한 내용들이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사랑의 서열을 세우려는 부질없는 시도(이를 테면 남녀 간의 사랑인 에로스보다는 무조건적 사랑인 아가페가 더 우월한 것이라는 식의)에서 벗어났다는 점도 포함되겠다.  

 

      다만 아쉬운 것은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글의 내용이 현학적으로 흘러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부분이다. 복잡한 내용을 대중을 적절한 예와 비유 등을 사용해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명쾌하게 정리해 내는 것이 루이스의 장점일진대, 그런 장점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사랑에 관한 빛나는 통찰력들(사랑이 최고로 고양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설명이 그 한 예)은 그런 약점을 만회하기에 충분한 득점을 올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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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자꾸 고라니가 들어와서 뜯어 먹어서요...;;

 

출입금지 표지판을 세웠습니다.

 

혹시 한글을 모르는 고라니가 있을까봐

 

그림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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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8 - 위기와 극복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8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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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네로 황제가 암살당하면서 시작된 1년간의 내전은 세 명의 황제들이 비명에 죽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1년 만에 세 명의 최고 권력자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이 벌어지자, 갈리아 지방에서는 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갈리아 제국’을 수립하려는 움직임까지 일어난다. 혼란을 수습한 것은 당시 유대 전쟁을 지휘하던 베스파시아누스와 시리아 속주 총독이었던 무키아누스였다. 무키아누스의 지지로 황제가 된 베스파시아누스는 ‘건전한 상식인’답게, 수도의 정치적 혼란을 잠재우고, 재정을 확충하는 등 제국 전역에 평화를 가져온다.


이후 그의 아들인 티투스와 도미티아누스가 차례로 이어 제위에 오르지만, 정확한 이유도 알 수 없이 도미티아누스가 암살을 당하면서 베스파시아누스의 플라비아누스 왕조도 고작 2대만에 막을 내리고 만다.



2. 감상평 。。。。。。。


네로 사후 갈바와 오토, 비텔리우스라는 세 명의 황제가 잇따라 제위에 오른다. 제국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식견도, 능력도 없었던 이들이 제위에 오르면서 일어난 일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원한과 보복, 편 가르기와 국가적 혼란이었다. 그리고 이 기간 일반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점점 더해갔고, 제국 산하에 있던 이방 민족들은 로마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지도자를 갖지 못한 민족의 불행이란 이런 것이다. 개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저력이 있어도, 또 눈에 띄는 성과를 만들어 낸다 해도 그것을 국가 전체 역량의 향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지도층들의 능력이다.


베스파시아누스의 치세가 이전의 황제들에 비해 꽤나 훌륭한 것이었음에도, 그가 의도했던 안정적인 제위 계승은 바로 그의 아들 대에서 무너지고 만다.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딱히 많은 사람들을 사형으로 몰고 가거나 추방하지 않았음에도, 또 제국의 방위선을 공고하게 만들었음에도 도미티아누스는 암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너무나 작은 이유, 혹은 편향된 관점으로도 얼마든지 황제는 살해당할 수 있었다.


흔히 로마인들을 ‘법의 민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수가 틀릴 경우에는 얼마든지 법으로 규정된 호민권 특권(신체불가침 특권)까지도 무시하면서 황제를 암살하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새로운 황제를 추대하는 것도 같은 로마인이었다. 이것을 단지 일부 사람들의 문제로 돌릴 수 없는 이유는, 도미티아누스의 죽음에 대해 딱히 이의를 제기했던 사람이나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나미는 황제란 원로원과 시민의 지지로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수도 없이 반복하지만, 적어도 이 시기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딱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우구스투스도 그랬지만, 혈연에 의한 제위 계승원칙을 강하게 천명했던 황제들이 매 새로운 왕조마다 있었지만, 얼마 가지 못해 암살로 왕조가 문을 닫게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시오노 나나미는 혈통으로 ‘권위’를 부여하려고 했다고 애써 변명하지만, 혈통이 항상 능력 있는 인물을 낳지 못하는 이상 이에 근거한 제위 계승 원칙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잇따른 정권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로마라는 나라 자체는 크게 흔들림 없이 지속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정권의 성쇠와 국가의 성쇠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 이것은 로마 제국의 지배층에 대한 독특한 시선 때문은 아닐까 싶다. 동양의 경우 혈통에 의한 정권과 왕조의 계승이 곧 국가의 계승이라는 사상이 강했기에 한 가문에서 능력이 없는 인물들이 등장하면 금새 새로운 나라의 건국으로 이어졌지만, 로마의 경우 혈통이 달라지고, 정권이 바뀌어도 로마라는 국체는 그대로 보존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에 달랐던 것.


이런 차원에서 보면 ‘짐은 곧 국가’라는 식의 왕권신수설을 주장했던 천년 뒤의 유럽 사람들의 사고야말로 오히려 퇴보를 하고 만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어느 시대고 정권에 충성하는 것이 곧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라는 식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거야 말로 정말로 제멋대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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