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질어질.


영화는 범죄 추적 스트리머로 활동하고 있는 우상(강하늘)의 방송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정장을 빼 입고, 조금은 어두운 조명 아래서 마치 전문 프로파일러처럼 방송을 하지만, 영화 내내 그의 진짜 스펙이라든지, 자격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밝혀진 바가 없다. 사실 우리가 방송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이라는 게 다들 그런 식이긴 하지만.


최근 발생한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방송을 시작한 우상은, 나름 여러 조사들 끝에 조금씩 범인의 활동 범위를 특정해 나가고 있었는데, 여기에 함께 했던 여성 스트리머 한 명이 갑자기 납치가 되는 사건이 또 발생한다. 제한 시간 내에 도착하지 않으면 여성을 살해하겠다는 연쇄살인범. 우상은 그를 쫓기 위해 카메라를 켜고 이곳저곳을 들쑤시는데, 감독은 이 과정의 상당 부분을 우상의 방송 화면으로 채운다.


덕분에 영상은 꽤나 흔들리는 느낌이다. 실제로 흔들렸는지, 시종일관 여기저기 들쑤시며 뛰어다니는 덕분에 그렇게 느껴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어질어질하다. 내용도 허술하고, 범행의 동기랄 것도 허접하고, 범인과 주인공이 얼굴을 마주하는 데도 별다른 긴장감 따위는 없다. 애초에 일개 스트리머가 연쇄살인범을 금세 추적할 수 있는데, 경찰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범인을 추격하면서도 실시간 방송을 끄지 않고 있는 건 상대방에게 내 패를 다 까고 자기를 두겠다는 건데, 이쯤 되면 그냥 멍청한 거다.





선정성.


영화 속 스트리머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유튜버나, 틱토커 기타 등등..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으니 자연히 경쟁도 심해지고, 서로 더 눈에 띄기 위한 소재와 영상을 꾸며대는 데 집중한다. 여기에 영화 속 우상이 활동하는 플랫폼에서는 최고 추천을 받은 스트리머에게는 50%에 달하는 플랫폼 수수료를 면제해 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면서 이런 흐름을 강화시킨다. 점점 선정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


문제는 그렇게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영상일수록, 이야기의 맥락이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승전-노출이라든지, 이른바 사이버래카라고 불리는 무차별 무지성 폭로 콘텐츠 같은 것들이 범람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아예 작정하고 협박 같은 범죄까지 저지르는 이들이 있으니..


뭐 사람이 사는 세상 어디나 쓰레기들이 쌓일 수밖에 없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온라인 공간에 쌓이는 이런 쓰레기들은 종종 사람들까지 위협하니 더 문제다(아, 오프라인 공간의 쓰레기도 사람에게 위협이 되는 건 마찬가지인가). 다만 영화 속에는 이런 문제의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영화 자체도 그런 선정성에만 집중하는 느낌이니까.





솔직히 이야기 하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강하늘은 나름 젊은 배우치고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이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워낙 캐릭터 자체가 허접하고, 허세로 가득 차 있는, 좀처럼 몰입하기 어려웠던 지라 연기력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조연이나 주조연급 배우들도 얼굴이 그리 익지 않아서인지 연기가 훌륭하다는 느낌도 별로 없고. 이쯤 되면 솔직히 그냥 시간 때우기 용, 혹은 콘텐츠 목록 늘리기용 영상물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주제 의식 자체가 삐뚤어져 있거나, 혐오감을 주는 지경까지는 아니다. 그냥 평범에 지루함이 조금 섞인 수준. 뭐 일단 재생해 놓고 다른 일을 하는 식으로라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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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나를 도와주기 전에는 신학서적을 읽어도 말짱 헛일이었다.

성경도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한 권의 문학작품이 나의 상상력을 일깨운 다음에야

내 마음은 이성보다 더 큰 맥락의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그리스도교가 옳다면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논리적 증거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논리적 증거가 아니라 보는 눈이 필요했다.

나는 문학이 변화를 가져오는 방식,

즉 이야기와 이미지와 상징으로 변화를 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복음의 단순한 진리들을 볼 수 있었다.


오스 기니스, 『고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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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등급도 장애인이 감당하고 있는 삶의 무게를 반영하지 못하듯

질병의 이름 역시 환자가 겪는 고통의 크기를 정해 주지 않는다.

질병과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려는 자세와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적극적 노력이 동반될 때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만들어질 수 있다.

질병과 장애를 등급으로 예단하려는 오만은 위험하다.

- 황승택, 『다시 말해 줄래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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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뚤어진 우정은 매우 위험한 적입니다.

이해관계에 얽혀 있거나 복수를 해야 할 그런 상황도 아닌데

저는 오직 친구들과 즐기기 위해 남에게 못된 짓을 일삼았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파렴치한 짓을 하지 못함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기는 어처구니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젊은 날의 방황과 아름다운 구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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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궁금한 당신에게 - 인생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기독교 신앙이 답하다
이호수 지음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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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인공지능 관련 연구로 보내온 공학자이자, 국내의 주요 기업들(삼성전자 부사장, SK텔레콤 사장)에서 일해 왔던 저자가,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 자신의 경험과 신앙을 담은 책들을 펴내고 있다. 기술에 관한 책들도 있지만, 최근에는 신앙에 관한 책을 두 권 연이어 냈다. 이 책은 그 두 번째 책이다.


앞선 책은 일상에서 떠올린 신앙과 관련된 단상들을 모은 에세집이었는데, 이번 책은 구성부터가 조금 더 짜임새가 있다. 제목처럼, 이 책은 기독교 신앙에 관해 좀 더 체계적으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설명해 주기 위해 쓰였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하나님의 존재, 죄, 구원, 그리고 신앙생활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조직신학의 주제들을 다룬다(의도하고 그 주제를 따라서 쓴 건 아니라고 한다).


아마도 저자가 받았던 다양한 질문들을 모으다 보니 이런 형태로 구성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렇게 보면 조직신학의 구성이라는 것이 꽤나 오랜 전통과 경험들 위에 탄탄하게 세워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결국 다양한 접근이 수렴될 수밖에 없는 식으로)





사실 저자의 전공을 보면 알겠지만, 신학 쪽을 공부한 건 아니다. 30대 후반에서야 처음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니, 젊은 시절 내내 기독교와는 관계없이 보낸 셈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아직 기독교에 발을 내딛지 않은 사람들, 기독교가 무엇인지 관심은 있지만, 선뜻 어떤 결정을 하기에 주저하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좀 더 잘 알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배경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열정도 있고, 여기에 어느 정도 사회적인 지위까지 있으니 사람들이 찾아와 질문을 하고 대화하는 일들이 자주 있었고, 결국 이렇게 책으로 정리까지 하게 되었으니, 비록 전공자가 아니라도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는 읽어볼 만한 내용일 듯하다.


전체적으로 어려운 내용은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 복잡한 신학적 논의나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고민 보다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보통의 사람들이 궁금해 할 만한 질문과, 그 수준의 답변들이 정리되어 있다. 물론 신앙에 관한 모든 질문에 합리적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어떤 부분은 이른바 신비의 영역에 속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저자는 그런 부분에서도 우리의 일상 가운데 발견할 수 있는 익숙한 예시들을 통해 이해를 돕는다.


기독교에 (우호적인) 호기심을 갖고 있는, 하지만 아직 교회에 들어오지 않았거나 이제 막 신앙의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선물해 주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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