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기원 - 아기를 통해 보는 인간 본성의 진실 아포리아 4
폴 블룸 지음, 최재천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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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하는 질문은 인류의 지성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물어왔던 질문이다. 철학과 종교에서는 이 질문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는데, 쉽게 합의를 이루지는 못했다. 오늘날에는 좀 다른 측면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려는 시도들도 있다. 이른바 뇌과학의 영향으로, 선악과 같은 도덕, 윤리의식을 뇌의 기능으로(그러니까 순수하게 물리적인 효과로) 치환하려는 태도다. 그러나 이 역시 모든 질문에 합리적인 대답은 아니기도 하다.


이 책은 영유아들의 행동을 연구하면서 인간이 선과 악을 언제부터 구분하게 되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한다. 사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실험 변수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한계(비윤리적이니까)를 지니는데, 저자는 그런 변수가 최소한으로 생기는 영유아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실험을 꾸밈으로써 이 문제를 피해가 보려고 시도한다.


물론 여기에도 어려움은 있는데, 말을 할 줄 모르는 아기들의 의사를 어떻게 파악할 것이냐는 점이다. 이 부분은 아아들의 표정과 눈동자의 움직임 등을 분석하는 최신 기술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봤다. 아이들이 선호하는 선택지에 더 오랜 시간 눈길이 머문다는 것. 이게 절대적으로 맞는 추측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실험이고, 저자의 결론도 명쾌하다. 아기들은 생후 1년이 되기 이전에 이미, 가장 단순한 형태의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를 구분할 줄 알고, 대다수가 선한 행위 쪽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실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들 가운데는 그렇게 단순하게 선악을 구분하기 쉽지 않은 것들도 잔뜩 있기에, 아기들의 행동에서 발견된 결과를 지나치게 확대해석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실험 결과는 책에서 묻는 “도덕은 타고나는 것인지, 만들어지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소위 진화심리학의 상투적인 표현(어떤 것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생존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존재론과 정의론의 기괴한 융합)을 사용해 가며, 어떻게든 (입증되지도, 관찰된 적도 없는) 과거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하며 이어져 온 진화적 생존 적응설을 꺼내지만, 애초에 그런 설명을 할 거라면 굳이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필요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연구의 방법론은 신박하긴 했지만, 선악이 무엇인지를 묻기에 아기들은 그리 적합한 스승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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