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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전
이시이 유야 감독, 오다기리 죠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1. 줄거리 。。。。。。。
1995년 일본의 한 출판사. 몇 년 째 변변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사전편찬부에서 갑자기 결원이 발생했고, 그 자리에 영업에는 영 소질이 없는 영업부원 마지메(마츠다 류헤이)가 옮겨 온다.
사람들 앞에서는 제대로 말도 못하는 마지메의 유일한 취미는 퇴근 후 하숙집 자신의 방에 들어와 책을 보는 것. 그런 그가 사전제작의 묘미에 조금씩 빠져 들어간다. 쉴 새 없이 단어들을 ‘채집’하고, 그것을 통해 현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전을 만들어 가는 일에서 주인공 마지메도 점차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한다. 마치 사전을 완성하면 그 자신도 다른 이들과 소통을 할 수 있게 될 것처럼 매달리는 마지메.
그리고 그 즈음 10년 넘게 하숙을 하던 주인집 할머니의 손녀 카구야(미야자키 아오이)가 나타났으니.. 다른 사람과 말도 제대로 걸지 못하는 마지메에게 반드시 자신의 마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런 그에게 맡겨진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풀이.
사전의 완성과 사랑의 완성은 과연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2. 감상평 。。。。 。。。
사전 제작이라는 상상치도 못한 소재를 가지고 영화까지 만들어 냈다. 정말 일본영화의 소재라는 건 다양하기도 하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뭔가 의미를 이끌어내는 식의 전개는 상당히 익숙한 구조이긴 하지만, 그게 또 작품마다 색깔이 다르고 개성을 발하니...
사전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었다. 수십 만 개의 단어와 그 의미를 풀어서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뭔가를 보존하려는 사명감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한 학문적 열정일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감독은 사전을 ‘소통’을 위한 도구로 정의한다. 영화 속 사전의 이름인 ‘대도해’도 큰 바다를 건너는 배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넓은 틈을 메우고 연결시켜주겠다는 포부를 가리킨다.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의미부여랄까.
영화의 구조로 보면, 사전을 만들어 가는 일과 카구야에게 마음을 전하려는 마지메의 도전이 병렬구조를 이루면서 앞서의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사전을 만드는 일 = 마음과 마음을 잇는 일”이다. 카구야와 마지메 커플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전 제작에 함께 참여하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두터워지는 에피소드도 덧붙여놓고 있다.

생각해 볼만한 부분 중 하나는 사전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 영화 속 시간으로도 족히 14년이나 걸린 이 작업은, 현대의 말을 많이 담아 사람들 사이의 소통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애초의 취지가 얼마나 기능할까 싶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예컨대 ‘구리다’와 같은 시중언어가 10년이 훨씬 지난 후에도 사전에 수록될 만큼 의미 있는 단어일까. 영화 속 마지메가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여고생들의 대화를 들으며 수집한 각종 축약어들은 15년 뒤에도 사용되고 있을까.
말이라는 게 10년이면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될 텐데,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 놓은 ‘현대어 사전’이 15년 뒤에도 ‘현대어’일지 모르겠다. 뭐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애초에 시도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느냐는 반론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21세기에 일본에 가겠다고 판옥선을 만들 필요는 없는 거니까.
얼마 전에 사무실 책장을 정리하다가 몇 권이나 되는 사전류를 모두 내다 버렸다. 사실 웬만한 건 휴대폰 검색으로 금세 그 의미가 나오는데다, 보다 자세한 어의도 지면의 제약이 없는 웹 쪽이 훨씬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영화 속 사전제작은 매우 낭만적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이제 이 쪽은 거의 사양산업이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다. 익숙한 무엇이 사라진다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뭐 그게 또 시대의 변화라면 따라가는 수밖에.
그저 나이를 먹는다고 다 말을 제대로 하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을 찾고 사용하는 건 여전히 중요한 일이다. 만약 영화 속 시간이 계속 흐른다고 한다면, ‘대도해’는 다시 10년이 흐른 오늘엔 어떤 취급을 받고 있을까 궁금하다. 마지메와 그의 동료들은 또 다른 종이사전을 출판하기 위해 단어를 채집하고 있을까? 아니면 마음과 마음을 잇기 위한 또 다른 수단을 찾아냈을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