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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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철학교수가 현대사회에 음울한 그림자를 짙게 만들고 있는 깊은 피로감의 원인을 추적해 낸 짧은 철학 에세이다.

     ​저자가 보기에 현대 사회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주로 ~은 하지 말라, 하면 안 된다는 식인 통제로 이뤄진) 억압적인 기제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다. 사람들은 이전의 권위들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자아실현을 외치고 있지만, 저자는 실제로 그들의 삶이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어제까지 그들을 자유롭게 해 줄 것 같았던 ‘할 수 있다’는 모토는, 이제는 (할 수 있는데도 이것 밖에 못하느냐는 식의) 자기규율이 되어 점점 더 높은 생산성을 요구하는 또 다른 관리자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비록 이 새로운 관리자가 어제의 관리자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나긴 하지만, 결국은 남들이 볼 수 없는 내밀한 곳까지 관리하게 된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이니까) 어쩌면 이번보다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런 사회구조는 현대인들에게 극심한 피로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논지다.

 

 

2. 감상평 。。。。。。

     ​일단 간결함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일종의 철학책이면서도 중언부언하지 않고 시작부터 바로 논의의 중심으로 쑥 들어간다. 덕분에 사회를 분석하는 저자의 틀도 꽤 명확하게 머리에 들어온다. (뒤로 가면서 이런 부분이 약간 희석되는 듯한 느낌도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책 전체 내용 중, 근대의 사람들이 신과 피안에 대한 믿음을 버리면서 동시에 현실에 대한 믿음까지 상실함으로써 인간 삶을 극단적인 허무 속에 빠뜨렸다고 진단하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다.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를 잃어버린 인간이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결국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건 인류 역사 상 가장 이기적이고 성마르며 폭력적인 사회가 아닌가 싶다.

     ​경제적으로도 아사(餓死)의 위협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을지는 모르나, 책 속에서도 자주 언급되듯 끊임없는 자기생산성 향상이라는 덫에 빠져 어떤 이는 완전히 소진되어 버리고, 또 어떤 이는 경쟁에서 낙오해 스스로를 배제시켜버리는 상황이니까.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한 밤중까지 일하면서도 그런 삶 이외의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절대 다수의 평범하고 피곤한 사람들은, 앞선 세대들이 했던 선택이 어쩌면 제대로 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강한 증거인지도..

​     피로사회에 대한 진단은 효과적이었던 반면, 그 해결책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하게 사유되고 있지 못한 듯하다. 책 속에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분노’의 가치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변화의 부싯돌이 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 이상의 역할을 하는 데는 좀 다른 재료와 계획, 비전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었다.

 

     책이 얇아서 가볍게 생각하고 집어 들었지만, 생각할 거리를 여러 개 던져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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