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위한 변론 - 우리가 잃어버린 종교의 참의미를 찾아서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준형 옮김, 오강남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1. 요약 。。。。。。。                 

 

     ‘신’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서양의 지성사 전반을 읽어가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인간들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뮈토스(신화)’와 ‘로고스’라는 두 가지 방식을 사용하는데, 종교란 논리적이고 설명적인 로고스가 아니라 좀 더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뮈토스에 속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고전 시기에는 이 부분이 비교적 제대로 이해되었으나 근대로 넘어오면서 뮈토스인 종교를 로고스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것이 문제(충돌)를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의 무신론자들이나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똑같은 함정에 빠져있다. 전자는 로고스로 뮈토스를 한정지으려 하고 있고, 후자는 뮈토스를 로고스로 이해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둘 사이의 어리석은 충돌과 싸움에서 벗어나 보다 긍정적인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종교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뮈토스가 원래 가지고 있는 중요한 속성인 초월성과 신비, 그리고 이에 대한 겸손한 침묵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2. 감상평 。。。。。。。               

 

     사실 현재 종교가 처한 상황은 그리 밝지 못하다. 도킨스나 히친스 같은 전투적인 무신론자들은 연일 종교를 무슨 해로운 바이러스나 되는 양 때려대고 있고, 호킹과 같은 저명한 물리학자들은 과학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는 종교에 유죄판결을 내린다. 그런 행동들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물음은 뒤로 미루고서라도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의 저자인 카렌 암스트롱은 좀 다른 방식으로 신을 위한 ‘변론’을 시도한다. 그녀는 적대자들을 향해 ‘타당한가’를 묻는 대신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를 역으로 질문한다. 앞서 요약한대로, 과학, 혹은 이성이라는 기반 위에서 신을 공격하는 이들은 뮈토스와 로고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로고스의 입장에서 뮈토스의 가치없음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마치 천문학자가 톨스토이의 작품이 비과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물론 여기에는 종교적 언명을 사실 그 자체로 여기려는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비판도 함께 수반된다.

 

     언뜻 꽤나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보이지만, 서양 지성사 전반을 검토하는 지난한 작업 끝에 저자가 지켜낸 그 ‘종교’는 ‘예술’과 딱히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신의 초월성을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전제 때문에 결국 인간이 신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모든 다리는 끊어져버렸고, 결국 그렇게 신과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는 상태에서 남은 것은 막연한 감동(혹은 감정적/지성적 충동) 말고는 또 무엇이 있을까 싶다.

 

 

     물론 신앙은 단지 특정한 언명에 대한 동의/부동의가 아니라, ‘헌신과 실제 삶의 문제’라는 저자의 진단은 곱씹어 볼만한 부분이다.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신앙이 그를 어떤 방식으로든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정통적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에 대한 전인적 헌신(행동이나 자세까지 포함하는)이 그것에 대한 인지적 헌신(믿음?)과 따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다.

 

     또, 서양 지성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종교적 인물들의 주장들을 살피면서, ‘어느 시대나 종교적 삶은 각양각색이고 모순적’(233)이라고 해석하는 데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가 살펴본 주요 인물들은 백년에 한 번 꼴로 새로운 논설을 펼칠 수 있는 인텔리 계층이고 대다수의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의 생각이 어땠는가를 바로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다. 또, 무엇인가 기록에 남는 것은 언제나 이전과는 다른 것을 주장할 때이다. 즉, 차이가 과대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정리를 하는 데는 유용할지 모르나, 실제가 어떠했는가는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토록 종교를 뮈토스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자가 가지고 있는 성경관(JEDP 문서설)은 로고스의 방식으로 성경을 산산조각 내는 지극히 근대적 방식이 아닌가.

 

 

     ‘신’과 그에 대한 반응이라는 중심 테마로 서양 지성사 전반을 요약해냈다는 점에서 만큼은 그 공헌을 인정받을 수 있는 책이다. 오늘날 종교가 자칫 잃어버린 것 같은 신의 초월성에 대한 인식의 환기는, 신의 뜻을 자신이 완전히 알고 있다는 교만에 대한 경고로 받을 수 있겠다. 그러나 결론적인 논지에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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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1-10-12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뷰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blueyonder 2011-10-1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가지, 제가 가지고 있는 의문을 말씀드립니다. 저는 '종교를 뮈토스로 봐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지식(또는 교리)에 대한 시인'으로만 받아들이는 요즈음의 '믿음'이 고대의 뮈토스처럼 의식(또는 제의와 실천)을 통한 삶에 대한 태도 변화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입니다. 저는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곳에서는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근현대의 과학이 그런 것이구요, 그래서 이성(과학)이 말할 수 있는 곳은 종교가 있는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창세기는 그런 관점으로 보면 상징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봅니다. 사실 창세기에서 많은 무신론자들이 걸려 넘어집니다. 교회에서는 성경이 문자적으로 모두 맞다고 하는데 과학에서는 다른 말을 하니까요. JEDP 문서설도 이성을 사용해서 합리적으로 성경을 분석해본 시도라고 보구요, 물론 100% 맞다고 얘기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타당한, 성경을 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란가방 2011-10-12 15:15   좋아요 0 | URL
신앙이라는 영역에 삶의 태도라는 중요한 지향점이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유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책의 저자는 둘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 부분에 동의할 수 없는 거죠.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란 게, 또 삶이란 게 그리 쉽게 합리라는 영역과 신앙이라는 영역으로 나뉠 수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떤 것이 역사적 기록인지 상징인지 하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그런 식의 경계라는 건 서로를 겸손하게 만들기보다는 서로를 대립하게 만들더군요. 우리나라의 군사분계선처럼요.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

blueyonder 2011-10-12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감사합니다. 결국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종교 다원주의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런 결론을 아마 기독교에서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겠지요. 이것이 아마 종교학 저술이 기독교에서는 인기 없는 이유이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종교학 책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그렇다면 과연 '진리'란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 종교의 진리가 맞다면 저 종교의 진리는 틀리다는 얘기인데, 종교학 하시는 분들은 뭐가 맞다 틀리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이 책을 보면서 이러한 의문이 '조금은' 해소되었습니다.

노란가방 2011-10-13 09:23   좋아요 0 | URL
책 속의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면, 진리에 헌신하기 전엔 그 진리는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종교다원론자들이나 비교종교학자들의 책들을 읽다보면 마치 먹어보지도 않은 음식을 품평하는 느낌이랄까... 뭐 그런 인상을 받곤 합니다.(어떤 분들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라 제 주관적 느낌이랍니다.)

개인적으로 종교다원주의라는 건 해결책이 아니라 일종의 포기선언이 아닌가 하는 견해입니다. 종종 그러면서도 대단히 교만한 입장이죠. 종교다원주의조차도 종교에 관한 하나의 견해일진대 그게 절대적인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좀 안맞으실 수도 있지만 시간이 나신다면 낸시 피어시가 쓴 『완전한 진리』라는 책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모략』도요. 제가 가진 관점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책들입니다.

blueyonder 2011-10-14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각자의 종교에서 헌신해서 '진리'와 '구원'에 다가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단, 종교 다원주의가 하는 말은 내 종교의 진리만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닐까 합니다. '상대적 진리'라는 말이 형용모순이긴 하지만 내 종교의 진리를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종교간에 싸움 밖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모든 종교에는 그 종교가 발생한 곳의 문화적 흔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가 상대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종교적 진리도 상대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겠지요. 그런 면에서 저는 성경의 모든 글자가 계시에 의한 것이고 한 자도 틀린 것이 없다는 주장에서 걸려 넘어집니다.

노란가방 2011-10-13 19:34   좋아요 0 | URL
모두를 인정해야 해결되는 건 아닐 수도 있지요. 모든 중년 여성을 어머니라고 해야 가정의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요. 내 어머니는 한 분이고, 내 아내, 내 여자친구도 하나인 거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를 제외한, 혹은 아내나 여자친구를 제외한 다른 여성들을 적대적으로 대할 필요는 없겠지요.

2011-10-13 1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란가방 2011-10-13 19:42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이렇게 웹상으로라도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어려운 말씀이실 수도 있는데 감사드립니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교회에서도 이런저런 불만족함을 가진 분들이 주로 저에게 말씀해주시더군요. 다른 목사님들에게는 못하시겠다면서.. ^^;;

그 책들이 도움이 되셨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