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무엇이 그들을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바꾸었을까. 저자는 1960년대와 70년대 복음주의자들이 오늘날 주요 주제 중 하나인 “낙태”에 대해서도 그리 비판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그 일에 관한 불가피한 상황을 좀 더 적극적으로 고려했었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압도적인 반응은 침묵이었으며, 간혹 그 문제에 관해 의견이 표명되더라도 그런 의견은 모호했다.”
오히려 복음주의자들이 크게 들고 일어나게 한 것은 다른 판결이었다. 1971년 그린 대 코널리 소송에서 컬럼비아 지방법원의 하급심은 인종차별에 관여한 어떤 조직도 정의상 자선기관이 아니며, 그에 따른 면세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핵심은 ‘세금’이었다는 말이다.
법적으로 인종차별은 금지되었으나 남부의 다양한 주에서는 실제적인 인종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밥 존스 대학교 같은 인종 분리학교였다. 미국 종교사에 관해 조금만 살펴도 꼭 나오는 학교인 이곳은 당시 흑인 학생의 입학을 불허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미국 대학교도 다양한 면세혜택을 받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대학교가 자선기관이라는 분류에서였다. 일부 흑인 학부들이 인종차별이 이루어지는 기관이 어떻게 자선기관일 수 있느냐며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그 소송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는 그런 학교에 한 기부 역시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없게 되면서 기부금액까지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으니 이중의 타격이었다. 당장 면세 지위를 박탈당하며 경제적인 손실을 입게 된 근본주의적 학교들은 대대적으로 들고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정부기관인 국세청이 나서자 적당한 눈속임은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서 비로소 (낙태 문제에 관해서는 침묵하던) 기독교 보수가 정치와 손을 잡기 시작했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