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카이퍼의 세 마리 작은 여우 - 교회 안에 숨어 있는 세 가지 위험한 신앙 ㅣ Abraham Kuyper Series 4
아브라함 카이퍼 지음, 이상웅 옮김 / 다함(도서출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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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카이퍼의 숨겨졌던 책! 이라고 하면 조금 과장된 홍보글 같겠지만, 역자의 해제에 따르면 실제로 이 글은 그동안 온라인상의 영역본을 제외하면 한 번도 번역된 적이 없다고 한다.


책 제목에 붙어 있는 “세 마리 여우”란 아가 2장 15절에 나오는, “포도원을 해치는 작은 여우들”에서 따온 것이다. 무슨 큰 소리를 내거나, 엄청난 충격을 주는 건 아니지만, 교회 안에 침투해서 슬그머니 담장을 무너뜨리고 그 힘을 흩어버리는 요소들을 “여우”에 비유했다. 이 글에서 꼽는 세 마리 여우는, 지성주의와 신비주의, 그리고 실천주의다.





지성주의와 신비주의는 상대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다. 지나치게 어려운 지적 문제를 다루는 데만 집중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카이퍼는 “회중은 강단 위의 공증인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이 일인 공증인과 설교자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 신비주의는 그 대척점에 서 있는 태도다. 단순히 감상적인 것을 넘어, 교회(와 성경)를 건너뛰고 바로 성령과 직접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이다.


이 두 태도가 어떻게 교회에 해를 끼치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자명하다. 전자는 교인들에게서 기운을 빼버리고, 후자는 교인들의 길을 잃게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 여우인 실천주의다. 카이퍼는 여기에 크게 세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있는데, 해외선교, 주일학교, 병자간호가 그것이다.


사실 이 세 가지 모두 교회에서 여전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고, 어느 것 하나 비판하기가 쉽지 않는 대상들이다. 카이퍼의 비판 지점은 비슷하다. 이 세 가지가 각각 어떤 좋은 열정에서 시작되기는 했으나, 결과적으로 교회와 상관없는 기관과 일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여러 선교단체들은 어느 새 교회와 경쟁하는 기관이 되거나 돈과 명예가 얽히면서 내부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다툼의 소식이 적잖이 들려오기도 한다. 주일학교의 경우 신앙교육을 단지 ‘학교’에서 배우는 무엇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국민교육이라는 당대의 세속적인 목표에 부합하는, 세속 프로젝트화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병자 간호는 간호라는 일의 외주화를 초래하게 되어 간호와 죽음이라는 일이 믿음과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가치와 분리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지적인 실천주의, 그 중에서도 병자 간호와 관련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다. 국민의 3/4이 병원에서 죽어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미국은 이 비율이 50%가 안 된다고 한다), 그런 죽음이 신자들에게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게 과연 옳을까. 사실 이런 죽음은 지극히 경제적이고 행정적인 논리를 추종하는 것인데, 더 나은 고민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이미 카이퍼의 시대로부터도 150년이나 지났는데 말이다.


결론부에서 카이퍼는 이 세 가지 지적이 그것들을 교회에서 없애자는 말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중요한 건 균형이라는 말이다. 지성도 필요하고, 신비도 필요하다. 실천 역시 결코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바른 신앙과 교리 위에서, 그러니까 검증된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확실히 카이퍼는 보수주의자였다.


사실 여기에서 지적한 것들은 아주 새로운 것도 아니고, 이미 과거 교회사에서 한 번 이상 등장했던 태도로, 그 결과는 이미 역사로 입증된 바 있다. 그 결과를 알고 있다면 다시 오류를 반복하면서 힘을 소진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물론 어지간히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인지라, 쉴 새 없이 어제의 실수를 다시 반복하고 있지만.(나 역시도...;)


100년도 훨씬 더 전에 나온 글이지만, 여전히 오늘날 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찬찬히 읽으면서 함께 나눠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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