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이 책이 나온 20년 전의 서구 교회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몇몇 초대형 교회들로 상징되는 성장주의, 부흥만능주의, 그리고 긍정심리학을 바탕으로 믿으면 뭐든 잘 될 것이라는 이단적 긍정신학이 두드러지던 시대였다. 저자는 그 시대를 이렇게 진단한다.
“스스로에 대한 치유적 관심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덮어 버리고, 영성이 신학을 대신하며, 종말의 도피주의가 일상의 제자도를 몰아내고, 마케팅이 선교를 축출하고, 여론조사 결과가 성경 주해에 대한 의존을 압도하며, 권력과 적합성에 대한 관심이 경건과 신실함에 대한 관심보다 두드러지며, 예배당을 재건하자는 말이 부흥을 위한 기도를 대체하고, 발흥하는 복음주의 하위문화의 재벌 왕국을 유지하려는 전력투구가 선교적 사역에 대한 복음주의의 특징적인 열정을 누르고 있다.”
저자는 “교회가 지금까지 속해 왔었던 모든 문화 중에서 현대 세계가 가장 강력하고, 가장 침투력이 강하고, 가장 압박이 심하며, 현대 세계는 교회 역사상 다른 모든 박해자보다 기독교의 순결함과 효율성에 가장 크게 손상을 입히고 있다”고 본다. 교회는 이 문화적 압박에 진작 굴복해버렸는데, 그 와중에서 자신들이 뭔가 대단한 전환을 이룬 것처럼 자화자찬하고 있다. 이전 시대의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 목록을 버린 것이 무슨 엄청난 영적 성장인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또, 저자는 이젠 설교 강단에서도 성경 본문에 대한 진지하고 충실한 주석보다, 온갖 종류의 (성경이 아닌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의 말이 권위 있게 인용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고 고발한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이 모든 가련한 항복의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품이 있는데 (비용이나 접근 기회의 차이가 없다면) 굳이 가품을 선택할 사람은 없다. 교회가 열심히 따라가려고 하는 세속주의적 새로운 가르침은, 이미 세상에서 더 잘 가르치고, 안내하고, 판매하고 있다. 그 내용이 별반 다를 게 없다면, 굳이 이런저런 부담을 지면서 교회에 나와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지 않겠는가? 어쩌면 이즈음 서구의, 그리고 우리나라의 기독교 신자 수의 감소는 이런 영향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