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형성사
옥성득 지음 / 새물결플러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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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인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여러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배우는 교회의 역사는 대부분 외국 땅에서 일어난 일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우리의 교회가 가진 역사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게 많지 않다.


한국 초기 기독교사에 관해서 읽을 만한 책을 쓰고 있는 옥성득 UCLA 교수가 낸 이 책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아마 대개는 우연히 설교를 통해 한 장면만을 들었을―초기 기독교 시기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초기 한국 교계에서 어떤 신명(神名)을 사용할지를 두고 벌어진 오랜 논쟁의 역사를 기술하는 1장의 내용부터 흥미로웠다. “천주”, “상제”, “신”, “하ᄂᆞ님” 같은 용어들이 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서로 대립하다가 결국 “하ᄂᆞ님(후에 맞춤법 개정으로 ‘하나님’으로 변경)”으로 정착되는데, 여기에는 한국인들의 종교심에 대한 독특한 선교사들의 이해가 배경에 깔려 있었다.


조선말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졌던 정감록이라는 예언서 속 한 구절이 기독교를 좀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내용을 담은 2장도 꽤나 흥미로웠다. “궁궁을을(弓弓乙乙)”이라는 일종의 파자 암호가 부적화되었을 때 십자가의 모양으로 그려진다는 점, “십승지지”라는 피난처의 십(十)이 꼭 십자가와 비슷하다는 점은 십자가에 대한 특별함 감정을 불러왔다는 것.


한국의 기독교는 단지 서양의 종교가 일방적으로 이식된 것이 아니었다. 3장과 4장은 유교와 도교 등 당시 널리 퍼져있었던 한국종교의 요소가 기독교 안으로 수용, 흡수되어 축귀와 추도회로 변형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5장은 20세기 초반 세워졌던 예배당의 모습에 수용된 한국적 요소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외에도 6장에는 초기 한국 교계에 영향을 미쳤던 다양한 한글 문서들에 관한 광범위한 정리가, 7장은 조선 땅에 널리 퍼진 부흥운동에 관한 약사가 실려 있다.





도입부에 언급했지만, 우리는 ‘한국의 기독교인’이지만, ‘한국’의 기독교에 대해 그다지 알지 못한다. 여기에 무슨 거창한 이론을 갖다 대지 않더라도, 분명 이건 뭔가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의 초기 기독교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소개해 주는 이런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여기에 저자는 다양한 문헌 자료를 정리해 보여줌으로써, 주제에 좀 더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점이 또한 이 저자의 책을 읽는 주요 목적이기도 하다. 당장 초기 한국 기독교의 신명에 관한 다양한 논의에 관한 부분만 보면, 조금 복잡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선교사들과 초기 신문과 저작물들 속 언급을 충분히 보여줌으로써, 당시의 분위기를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만한 책이 얼마나 있을까 싶을 정도.


역사의식, 역사감각의 부재는 오늘 내가 보는 것만이 전부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기독교의 역사는 2천 년이고, 전 세계에 걸쳐 있지만 우리는 그 1/10일, 1/100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도 충분히 신앙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상태로는 중요한 것을 놓칠 수밖에 없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더라도(그리고 900페이지 가까이 되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더라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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