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실린 연설은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한 청중들을 배경으로 한다. 젤렌스키는 자신의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의 기억 속 역사의 한 장면을 자연스럽게 꺼내고, 그걸 오늘의 현실에 오버랩 시킨다. 히틀러의 유대인 인종학살은 유대계인 젤렌스키 본인과 푸틴의 잔악한 민간인 학살과 겹쳐지고, 그런 히틀러를 자극할까 두려워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꺼렸던 영국과 프랑스의 실책은 정확히 푸틴을 자극할까 두려워하며 무기제공을 주저하는 서방세계의 모습에 덧씌워진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고르바초프에게 했다는 “벽을 허물라”는 말은, 다시 그대로 적극적인 지원을 주저하는 독일 총리 숄츠에게 하는 말로 바뀐다.
그의 연설은 품위가 있고, 절제되어 있다. 무의미한 어구의 반복이나, 자기도 모르는 용어의 남발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모름지기 국가 지도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 정도의 품격은 있어야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든다. 빙빙 돌려 말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노골적이지 않다. 그의 연설문에 도움을 주는 비서들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단지 누가 써준 걸 대신 읽는 식으로는 이 정도의 호소력을 갖추기 힘들다.
비록 우크라이나가 선전하고 있지만, 전쟁의 결말이 어떤 식으로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용기와 인내, 그리고 절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훌륭한 덕성을 이미 충분히 보여주었다. 또, 이 큰 위기의 상황에서 젤렌스키 같은 좋은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 또한 분명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부디 학살자에게는 영원한 저주가, 그리고 우크라이나에게는 영광이 있기를(Slava Ukra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