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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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저녁, 일주일 가까이 들고 있던 이 책을 다 읽었다. 공교롭게도 장례식 빈소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죽음과 부활, 그리고 우주의 종말이라는 묘한 조합이다.



브라이언 그린이 쓴 책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읽었던 『우주의 구조』는 제목처럼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원리에 대한 탐구였다면, 이번 책은 “시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주의 역사를 탐구, 조망한다.


1장에서 3장까지는 물리학 법칙에 따른 우주의 발생과 진화를 다룬다. 빅뱅과 엔트로피의 증가, 그리고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영역에서 엔트로피의 감소(질서의 증가)가 나타나는 “엔트로피 2단계”의 영향으로 우주가 오늘에까지 이르렀다는 내용이다. 저자의 앞선 책에서도 일부 볼 수 있었던 것들이다.


물리적 세계에서 생명이 출현하는 과정을 다룬 4장과, 이어 의식과 마음, 신앙까지도 다루는 5장부터 9장은 위치적으로도 책의 중심에 놓여있고, 분량도 적지 않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헐겁게 느껴졌다. 유물론적 환원주의자인 저자로서는 어떻게든 “오랜 시간”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내서 이런 주제들마저 물리적인 용어로 설명하려고 애쓰지만 그게 썩 잘 되지는 않는다.


책의 곳곳에서 저자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설명이 얼마나 곤혹스러운 내용인지를 토로한다. 의식을 설명하는 일은 “과학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197)이며, 예술에 관한 경험에 대해서는 “굳이 말로 표현하고 싶지 않”으며, “내면의 자아가 입을 다무는 순간”이라고 고백(335)한다. 308쪽에 등장하는 종교에 관한 “완전히 논리적인 서술”은 사실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으며, 어떻게든 이 주제를 유물론적 환원주의에 충실한 교리로 설명하려는 노력만 돋보일 뿐이다.


마지막 두 장은 우주의 미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사라질 것 같다는 내용이다. 의식을 가지고 사고하는 존재가 계속 있을 것인가 하는 주제가 잠시 던져지기도 하지만, 수백 억 년 이후에 일어날 작은 일에 그토록 집중하는 모습은 조금은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애초에 의식이라는 게 그저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생겨버린 사고와 같은 것에 불과한데, 그것이 계속 유지되는지의 여부가 우주적으로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책은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혔다. 하지만 유물론적 환원주의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 즉 아무 의미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부분이 강하게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C. S. 루이스가 말한 것을 약간 변용하자면, 의식과 이성적 사고라는 게 그저 우연히 쏟아버린 우유에 불과하다면, 그 우유의 쏟아진 모양을 보고 앞날을 예측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브라이언 그린이 리처드 도킨스 같은 유사 물리-인문학자보다 나은 점은, 그린 역시 자유의지를 단지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갑자기 벤치를 박차고 튀어 올라 사람을 구하”는 것(219) 정도로 설명하면서도, 그 이유를 “이기적 유전자” 같은 허황된 상상에서 끌어대는 대신 그냥 모른다고, 다만 그런 일들을 회상하며 뿌듯함을 느끼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220) 뭔가 (자신의 설명이 갖는) 한계를 인정하는 부분이다.


저자의 설명을 따르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질서정연한 우주가 형성되고, 그 안에 생명이 존재하고, 또 그 중 의식을 가진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극히 작은 확률의 사건이다. 물론 저자는 무한대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아무리 작은 확률의 사건이라도 얼마든지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취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사건이 갖는 기적적인 확률을 부정할 수는 없었는지, 책 말미에 이렇게 쓴다. “우연의 신이 우리를 한없이 축복하사, 자연의 법칙이라는 좁디좁은 깔때기를 통과하여 우리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457)



결국 현대 물리학은 우주는 아무 것도 아닌 데서 시작해, 지금도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것도 아닌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우주의 원리를 밝혔더니, 결국 다 없어져버릴 일이라는 결말이 조금은 허탈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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