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편에서 유럽 각지에서 모인 영주들의 군대에 의해 점령된 “성지”에는 크게 네 개의 십자군 국가가 세워졌었다. 북쪽에서부터 에데사 백국, 안티오키아 공국, 트리폴리 백국, 예루살렘 왕국이다.


사실 십자군에 관한 역사기록을 처음 볼 때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다. 어떻게 그 지휘계통도 일원화되지 않았던 유럽의 군대가 먼 동방에서 나라를 세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세워진 나라가 이슬람 세력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어떻게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는지 하는 것들이다.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이슬람 세력들은 수많은 작은 세력으로 나뉘어서 서로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느라 일치단결해 십자군과 싸울 수 없었고, 십자군측에는 뛰어난 지휘관들이 여럿 있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번 권에 실려 있다.




“동방”은 넓은 땅이었다. 오늘날을 기준으로 보면, 이집트부터 팔레스타인, 시리아, 터키,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란 지역까지를 넓게 둘러싼 곳이다. 이 땅이 이슬람화되어있던 상황에서, 십자군은 지중해 동부 해안지역을 따라 그들의 영토를 만들었다. 오늘날로 치면 이스라엘과 레바논, 시리아 일부다.


그런데 이들이 영토를 지키기 위해 가지고 있었던 병력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우선 각 나라의 지배자들이 가지고 있는 직속 부대가 일부 있었지만 모두 합쳐 수천의 기병에 불과했다. 여기에서 작가가 중요하게 꼽는 것이 성전기사단과 성 요한 병원기사단(훗날의 로도스기사단, 몰타기사단)이었다. 이들 기사단의 주력인 중무장 기병은 합쳐도 고작 수십에서 3, 4백 명을 넘지 않았지만, 무슬림 적과 싸우기 위해 서약한 전문 전사집단은 일종의 특수부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게 시오노 나나미의 평가다.


그래도 수적 열세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십자군 세력이 자주 사용한 것이 성채다. 이번 권에서는 이 ‘성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꽤 흥미로운 관찰이다. 십자군 국가들 전역에 길목마다 건설된 성채는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우 요긴한 시설이었다. 특히나 이슬람 군대는 이런 단단한 방어시설을 공격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와 전통이 부족했었다.


또 하나의 요인은 예루살렘 국왕들의 책임감이다. 보두앵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온 역대 국왕들은 자신들이 맡고 있는 책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성채와 두 기사단의 도움을 받아 현 상황을 간신히 유지해 갈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이런 요인들이 하나씩 사라져가 버리는 게 이번 책의 내용이다. 국왕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마지막 예루살렘 왕 보두앵 4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왕위는 혼란에 빠진다. 어린 아들(보두앵 5세)은 즉위 후 2년 만에 죽어버렸고, 보두앵 4세의 누이와 결혼한 덕에 왕위에 오른 뤼지냥은 무능 그 자체였다.


반면 이슬람 세력에서는 끊임없이 인재들이 출현하고 있었다. 장기와 누레딘, 그리고 살라딘까지... 인재가 줄어드는 세력과 반대로 인재가 분출되는 세력이 대결을 하면 그 결과는 뻔 한 것이었다. 무능한 뤼지냥은 남은 병력을 소진시키는 멍청한 짓을 저질렀고, 그대로 예루살렘은 살라딘에 의해 정복되고 만다.


하지만 살라딘은 단지 군사적 재능만 있는 장수가 아니었다. 이슬람 세력에게도 성지였던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 그는 십자군 국가들 사이를 갈라놓는 사전작업을 잊지 않는다. 에데사 백국은 진작 장기와 그의 아들 누레딘이 나타면서 사라져버렸고, 북쪽에서 오는 적을 가장 먼저 맞게 된 안티오키아 공국은 급격히 소극적으로 변해버린다. 네 개의 십자군 국가들이 긴밀하게 연계하면서 적들에 맞서 싸우는 것이 핵심이었던 공동방어전선이 깨져버린 것이다.




온통 이슬람 세력에 둘러싸인 기독교 국가라는 십자군 국가들의 처지는, 고도의 정치적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 때 정치적 기술이란 주변의 강국들에게 무조건 아부하고 아양을 떠는 식이 아니라, 필요한 범위 내에서는 이슬람 세력들과도 협력을 하면서 동시에 위협이 되는 적의 공격을 격퇴할 수 있는 든든한 힘을 전제로 한다. 결국 안보는 남의 손으로 지킬 수 없는 것이라는 게 역사의 교훈이니까.


자연히 우리의 상황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과 정교한 외교관계를 맺어야 하는 처지에서, 이 즈음 우리는 현명한 사고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를 가지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최근 물씬 느껴지는 것 중 하나가 점점 인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 시절 영웅들을 소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갈수록 젊은이들이 현실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상황이 극적으로 개선될 것 같지도 않는 상황에서, 미래가 썩 밝을 것 같지도 않다는 게 문제.


십자군 국가는 그렇게 무너졌고, 이후 여러 차례 새로운 십자군이 결성되었지만 한 번도 성지를 탈환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 번 무너진 국력은 그만큼 회복시키기 힘든 법이다. 결국 무너지기 전에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야 했던 건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