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은 넓은 땅이었다. 오늘날을 기준으로 보면, 이집트부터 팔레스타인, 시리아, 터키,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란 지역까지를 넓게 둘러싼 곳이다. 이 땅이 이슬람화되어있던 상황에서, 십자군은 지중해 동부 해안지역을 따라 그들의 영토를 만들었다. 오늘날로 치면 이스라엘과 레바논, 시리아 일부다.
그런데 이들이 영토를 지키기 위해 가지고 있었던 병력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우선 각 나라의 지배자들이 가지고 있는 직속 부대가 일부 있었지만 모두 합쳐 수천의 기병에 불과했다. 여기에서 작가가 중요하게 꼽는 것이 성전기사단과 성 요한 병원기사단(훗날의 로도스기사단, 몰타기사단)이었다. 이들 기사단의 주력인 중무장 기병은 합쳐도 고작 수십에서 3, 4백 명을 넘지 않았지만, 무슬림 적과 싸우기 위해 서약한 전문 전사집단은 일종의 특수부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게 시오노 나나미의 평가다.
그래도 수적 열세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십자군 세력이 자주 사용한 것이 성채다. 이번 권에서는 이 ‘성채’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꽤 흥미로운 관찰이다. 십자군 국가들 전역에 길목마다 건설된 성채는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우 요긴한 시설이었다. 특히나 이슬람 군대는 이런 단단한 방어시설을 공격하는 데 필요한 노하우와 전통이 부족했었다.
또 하나의 요인은 예루살렘 국왕들의 책임감이다. 보두앵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온 역대 국왕들은 자신들이 맡고 있는 책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성채와 두 기사단의 도움을 받아 현 상황을 간신히 유지해 갈 수 있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