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약.
원작이 워낙에 대작인지라 그걸 영화 한 편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영화도 원작 중 초반 일부만을 따와서 교봉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중원의 개방을 떠나 거란으로 가게 되었는지에 관한 내용만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교봉이 거란 진지를 향해 말을 타고 달려가는 모습으로 끝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스토리가 썩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작을 잘 아는 사람이야 그 빈틈을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 있겠지만, 나처럼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주인공 교봉이 갑자기 아주라는 여자와 급격히 사랑에 빠진 것도, 우연히 만단 단예와 호형호제 할 정도로 가깝게 나오는 이유 같은 것들은 전혀 영화 속에서는 설명되지 않아 이해가 어려웠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개방파의 고위간부들은 자신들의 방주를 추방하는데 겨우 부방주의 아내 한 사람의 증언에만 의지하고 있고, 금세 죽일 듯 교봉을 몰아간다. 여기에 자칭 온갖 문파들도 발작적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지 다짜고짜 교봉을 몰아가는 데 동참하고, 심지어 후반엔 교봉 역시 마찬가지의 행동을 보인다. 정의니 공정이니 운운해도 하는 짓은 결국 그냥 동네 양아치들, 혹은 조폭이랑 비슷하달까.
물론 이런 무협영화는 그냥 즐기면 그만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는 확실히 견자단 액션이 볼만 하긴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