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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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에 이 책 전집(3권)이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올라왔을 때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주제도 워낙 관심이 갔고, 저자도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확실히 글재주가 있는 시오노 나나미였으니까. 확실히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이었고, 한참 만에 꺼내 읽기 시작하다 과연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십자군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었다. 거의 200년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되었던 사건들을 통칭하는 명칭이다. 그 중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건 1095년 시작된 첫 번째 십자군이다. 당시 유럽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교황 사이의 대립이 꽤나 격렬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으로 황제가 교황에게 무릎을 꿇었던(상징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것이 바로 몇 년 전이었고, 이에 원한을 품고 있던 황제는 곧 자신을 무릎 꿇린 교황을 몰아내버렸다.


같은 시기 유럽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이슬람 세력의 위협이 일종의 상수였다. 아라비아 반도의 한쪽 구석에서 시작된 이슬람 세력은 곧 아라비아 반도 전체와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전역, 그리고 이 시기에는 북아프리카 전체와 유럽의 일부(이베리아 반도)까지 세력을 확장한 상황이었다.


십자군은 이 두 가지 상황을 한 번에 타개해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레고리우스 8세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했던 우르바누스 2세는 이슬람 세력에 의한 예루살렘의 성묘교회 파괴와 순례자들에 대한 공격을 명목으로 ‘성지회복’을 위한 십자군을 주창한다. 그리고 여기에 유럽의 여러 귀족들이 참여하면서, 교황의 권위는 전 유럽에 떨쳐지게 된다.


1차 십자군은 사실상 성지 회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유일한 십자군이었다. 사실 여기에는 프랑스나 잉글랜드의 왕이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같은 군주들이 직접 나서는 대신,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지역의 영주들이 주축이 되어 자칫 오합지졸이 될 뻔했던 구성이었지만, 노르만족 출신의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와 그 조카인 탄그레디, 또 독일 지역의 로렌 공작 고드프루아와 그 동생 보두앵 등 전술과 전략에 뛰어난 지휘관들과 오히려 사분오열 된 이슬람 세력의 상황으로 지중해 동부 연안을 점령하고 일종의 기독교 연방 국가들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전체 3권 중 첫 번째 책인 이번 권의 이야기는 딱 여기까지였다.





뭐 이 정도의 간략한 이야기는 인터넷을 조그만 뒤지면 누구나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역시 시오노 나나미의 글이라면 디테일한 사건의 전개 과정 묘사, 그리고 이 과정이 흡입력 있게 재구성되어 있다는 장점 아니겠는가. 기록으로만은 쉽게 파악하기 힘든, 인물들의 성격 묘사와 그들이 내린 결정에 어떤 사고과정이 있었을지 하는 부분들은 인상적이다.


물론 “로마인 이야기” 때부터 은근 자주 보였던 군국주의 전통을 가진 국가(일본)에서 나고 자란 일본인다운 제국주의적 관점이 여기에서도 틈틈이 보이긴 한다. 예컨대 ‘지즈야’라는 비무슬림에게만 부과되는 세금을 내면서 살아야 했던 이슬람 세계 속 기독교인들의 처지를 나름 나쁘지 않은 거 아니냐는 식으로 묘사하는 부분(30)은, 과거 일제의 식민지 시절 조선인들도 조금 피해를 입긴 했으나 나름 살 만했다는 어느 무지한 이들의 망언을 떠올리게 만든다.


또, 대체로 힘의 원리를 신봉하고 있고, 정복자, 특히나 인상적인 전과를 올리는 정복자들에게 우호적인 서술을 한다거나,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은근한 폄하도 있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없는 걸로 생각하고 무시해버리는 케케묵은 계몽주의 시대 똑똑이들의 관점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1차 십자군의 과정에 관해서 이보다 재미있게 풀어놓은 책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약간은 애증의 감정으로 계속 보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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