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이상한 행복 -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불편한 진실
안톤 숄츠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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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알린 안톤 슐츠라는 방송인(실제로는 좀 더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산 지 20년이 넘어서 우리말도 능숙하게 할 줄 알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배경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그는, 동시에 이방인으로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우리를 관찰할 수 있는 관찰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작가의 장점을 잘 살린 기획인 것 같다. 한국을 잘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을 고국으로 여길 수 없는 관찰자의 건전한 비판이 이 책의 핵심적인 성격이다. 아주 진지하게 한국사회에 대한 연구서를 쓴 건 아니고, 자신의 경험을 적당히 섞어가면서 에세이 느낌이다.



1장에서는 일과 여가 사이의 균형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공정’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자기본위의 거짓구호가 될 수 있는지를 지적하면서, 또 하나의 유행어인 ‘워라벨’에 대한 이상한 집착이 오히려 일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도 말한다. 물론 과도한 노동시간은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 역시 내 인생의 일부이며, 일을 통해 얻는 성취감과 기쁨 또한 존재하지 않느냐는 것. 또, 학생들의 경우는 ‘스라벨(스터디 라이프 밸런스)’ 또한 중요하다는 점도


2장은 여행과 관련된 내용이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지역과 나라를 여행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는지를 언급하면서, 여행을 통한 성장을 경험해 보라고 제안한다. 물론 이 때 여행은 누가 대신 짜준 시간표를 따라 이곳저곳을 움직이며 사진만 찍는 식이 아니라, 현지의 사람과 문화를 충분히 경험하는 그런 시간이어야 하고.


3장은 집과 관련된 한국인의 기묘한 집착을 다룬다. 집을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사고파는 상품으로만 여기는 인식이 우리 삶을 얼마나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지에 관한 지적이다. 4장은 교육과 관련된 내용으로, 오로지 시험성적 위주의 교육이 낳은 한심한 결과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부분에 언급된 독일의 공교육(그 동네엔 사교육이 없다고 하니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지만) 과정은 확실히 부럽기도 하다.


마지막 5장은 한국사회를 다루는데, 여기에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많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삭제 문화(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발언을 봉쇄하거나 차단하는)’에 대한 지적도 곱씹어 볼만한 지적이고, 흔히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라고 부르는 ‘한’에 일종의 피해의식의 성격이 있다는 설명은 조금은 신선했다.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과 동정, 나아가 호의적 반응까지 얻을 수 있다는 건데, 이런 정서가 사회 전반에 확산될 경우 지나친 자기비하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일견 조금은 보수적인 견해처럼 보일 수도 있다. PC의 삭제주의를 비판하고, 열심히 일하는 즐거움을 논하거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며 많은 나라들의 롤모델인 한국에 살면서 이 사회를 지옥(“헬조선”?)이라고 엄살을 피는 게 맞느냐고 지적하고 있기도 하니까. 온통 “상처받았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오늘날에는 꼰대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부분 때문에 책 초반 잔뜩 양해의 말을 덧붙였던 것일 게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과도 대화를 시도하고, 나와 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경험을 강조하고, 동시에 그러고도 있다. 온통 비판만 쓴 것 같지만, 또한 한국이라는 나라의 장점에 대해서도 매우 잘 알고(그러니 20년 가까이 이 땅에서 살았을 테고) 그걸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가 방송에 나와 던지는 이야기들을 보면, 특정한 정파에 속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지도 않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다. 요컨대 관점이 다른 것이고, 이 부분은 그가 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독일과 우리나라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분명 독일인의 눈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여러 모습들에서 이상함이 발견되었던 것.



물론 그의 지적을 모두 수용할 필요는 없지만, 개인적으론 꽤 타당한 면이 있다고 본다. 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소위 “뽕”에 빠져서는 안 될 테니까.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 논리는 대개 상식적인 것들이라서,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비상식적으로, 혹은 그저 적당히 넘기고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책의 내용이 불편하다면, 어쩌면 그만큼 우리가 이상함을 이상하게 여기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 돌아볼 일이다. 어쨌든 계속 살아가야 할 우리 사회를 읽는 데 분명 도움이 될 만한 지점들이 여럿 보이는 책이다. 물론 오로지 자신을 공감해 주기만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이 책 속 내용들이 불편할 게 분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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