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 하나님의 사람 4
에버하르트 베트게 지음, 김순현 옮김 / 복있는사람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뉴스 화면 속에서 본회퍼의 문장이 가장 극악한 방식으로 모욕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ㅈ이라는 (자칭)목사가 자신의 정치집회에 본회퍼의 그 문장을 커다랗게 인쇄한 현수막을 걸어놓은 것이었다. 어떻게 ㅈ같은 인사가 감히 자신을 본회퍼의 후예인 양 ‘참칭’(이 어려운 단어를 최근 누가 다시 뉴스의 한복판으로 들고 나왔다)할 수 있는지 어이가 없으면서도 화가 나서, 서둘러 본회퍼의 글로 눈을 씻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에는 예전에 중고서점에서 구입해서 책장 한쪽에 숨어있던 이 책이 있었다.(읽지 않은 책들이 잔뜩 꽂혀 있는 책장은 부끄러운 모습이다. 환경적으로도, 지적인 허영심이라는 차원에서도) 만들어진지 오래되어서(벌써 절판된 책이다) 종이가 누렇게 바래있었지만 읽기엔 별 문제가 없었다. 양장본임에도 가벼운 종이를 사용해서 들고 다니기도 좋다. 출판사에게 잠시 박수를.



이 책은 본회퍼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전기의 축약본이라고 한다. 원래는 좀 더 두툼했을 책을 나 같은 보통사람들을 위해 작게 편집한 것. 덕분에 전기이지만 아주 세세한 내용들을 길게 나열하는 대신, 그의 삶 주요 지점들을 꽤 속도감 있게 걸으면서 살핀다. 확실히 지루함은 좀 덜하고, 리듬을 잃지 않으면서 본회퍼의 삶을 전체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장점 가운데 하나라면, 역시 저자가 본회퍼의 누이의 딸과 결혼을 해 그의 일가에 속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덕분에 다른 데서 얻을 수 없는 좀 더 내밀하고 개인적인 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고, 이런 점은 인물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치열하게 살다 간 인물이다. 나치가 독일 내에서 점점 세력을 얻어가고, 그를 추앙하는 대중들이 아리아인 민족주의니, 반유대주의니 하는 혐오 주문을 되뇌고 있을 때, 독일의 교회들도(심지어 고백교회의 일부도) 이런 흐름에 동참했었다. 본회퍼는 이런 상황에서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고 깊게 고민했고, 결국 히틀러를 제거하는 계획의 일원이 되었다가 거사가 실패한 후 사형에 처해진다.


이런 배경 때문에 그의 글에는 진득한 땀과 피가 느껴진다. 그는 자신이 뭔가 한 자리를 하거나 이름을 알려보겠다는 잡스러운 욕망과는 거리가 멀었고,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전념했던 인물이다. 어디 감히 ㅈ같은 인물이 갖다 댈 수준이 아닌 거다.


다만 이런 부분 때문에 본회퍼의 신학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특정한 문제에 대한 깊은 사고를 담은 단편들로만은 그 생각들 사이의 틈을 완전히 메우는 건 쉽지 않으니까. 이 책에서도 그런 면이 좀 느껴진다. 뭔가 종합을 시도하려고는 하지만, 썩 괜찮은 결과물이 보이지는 않는달까. 하지만 꼭 종합을 해야 뭔가 배울 게 있는 건 아니니까.



아직 본회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그리고 알고 싶다면, 한 번쯤 손에 들어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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