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흑역사 - 왜 금융은 우리의 경제와 삶을 망치는 악당이 되었나
니컬러스 섁슨 지음, 김진원 옮김 / 부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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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맨섬, 케이먼 제도 같은 이름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주제가 있다면 아마 당신은 금융 분야에 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거나 꽤 아는 사람일 수 있다. 이런 게 어렵다면 파생상품이나 법인세 인하, 조세도피처, 페이퍼컴퍼니, 신탁 같은 용어들을 들으면 조금 더 쉽게 뭔가 떠오를 지도 모르겠다. 뭔가 엄청난 금융범죄를 법에 걸리지 않는 방식으로 저질러 큰 재산을 쌓는 교활한 사기꾼들 같은.


이 책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금융범죄(아, 그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법을 바꾸거나 재해석함으로써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으니 여기서 ‘범죄’라는 건 현행법을 위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하는 행위가 부도덕하고 많은 피해를 발생시키는 고의적인 일이라는 의미다)에 관한 고발서다. 어떻게 수많은 페이퍼컴퍼니들을 거치며 이익이 국외로 빠져나가는지, 온갖 복잡한 금융기법이 실제적으로 투자자와 시민들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소수의 부자들의 부를 지켜주고 있는지 같은 내용이 가득 차 있다.


책이 꽤나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있어서 자칫 좀 어려운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페이퍼컴퍼니들이 어떻게 파이프처럼 전 세계를 연결해서 돈의 최종목적지를 알 수 없게 흘려보내는지, 신탁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세금을 피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재산을 편하게 누리는지를 보고 있으면 살짝 어이가 없는 느낌이 들 정도다. 사기가 이렇게 쉽다고?





이 즈음 우리나라에서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금융’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다. 사실 고상하게 말해 금융, 투자이고, 쉽게 말해 한 두 개의 “핵심적인 정보”를 통해 손쉽게 돈을 벌어보겠다는 투기심리가 그 바탕에 깔려있는 것 같지만(당연히 그런 투기는 대부분 실패한다).


문제는 자기 돈을 가지고 그렇게 투기에 실패하는 것이야 개인적인 문제일 수 있지만, 남의 돈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은 사회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고발하고 있는 행위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돈을 맡긴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훔쳐내는 돈이 원래 돌아가야 할 시민들의 것을 약탈한 비열한 치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들은 비싼 옷을 입고, 비싼 술을 마시며, 호화로운 요트나 호텔에서 파티를 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 화려한 모습에 불나방 같은 골빈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처벌받지 않고 남의 돈을 흥청망청 쓸 수 있는 기회니까.





요점은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건데, 이들의 활동무대가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전 세계이기에, 어느 지역에서 관할권을 주장하는 게 좀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한 부분인데, 이 사기판에 조금 먼저 뛰어든 대가로 생기는 콩고물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으니 그 또한 쉽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결국 탐욕 때문에 다 같이 망하고 말지도 모르겠다. 문제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정부를 구성하는 건 시민 대다수의 결집된 의지인 투표결과인데, 최근의 투표들을 보면 시민들에게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 같으니까. “돈을 사람 하는 것이 일만 악의 근원”이라는 바울의 조언은 언제까지 공중에 떠돌기만 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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