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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9월
평점 :
와우. 이 제멋대로의 천방지축 캐릭터들이 난무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는 뭘까. 작가의 전작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소문은 자주 들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아 아직 읽어보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보니 앞선 책들도 재미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500페이지가 넘는 작품인데도 출퇴근 하는 지하철 안에서 이틀 만에 거의 다 읽어버렸을 정도로 재미있고, 흡입력이 좋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건 역시 캐릭터다. 제2의 히틀러를 꿈꾸고 있는 스웨덴(!)의 한 극우망상가 빅토르, 그가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중간단계로 결혼한 옌뉘(빅토르가 일하던 미술갤러리 사장님의 어린 딸이다), 빅토르와 관계를 맺던 여성으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떠안게 된 소년 케빈, 케냐에 유기된 케빈을 데려다 양아들로 받아들이고 마사이 전사(?)로 교육한 유쾌한 치유사 소 올레 음바티안, 그리고 잘 나가던 광고회사를 때려치우고 복수대행회사를 차린 후고까지.
언뜻 들으면 스웨덴과 케냐, 미술갤러리와 네오나치, 마사이족 전사와 치유사 같은 소재가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 안에 엮여 들어갈지, 그리고 여기에 실존하는 화가인 이르마 스턴이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까지 포함되는 국제적이고 통섭적(?)인 이야기의 전개 방향이 쉽게 예측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무리할 것 같은 이야기가 우당탕탕 어찌어찌 진행되어 가는 게 백미고.
예컨대 빅토르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이혼을 당한 옌뉘와 사자밥이 될 뻔 했다가 마사이 전사로 성장한 후 스웨덴으로 돌아온 케빈이 약혼을 하고, 두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한 빅토르에게 복수하기 위해 재미있는 일을 찾던 후고가 차린 복수대행 회사에 들어와 무급직원으로 일하며 복수를 계획한다는 설정은 누구도 쉽게 만들어 내기 어렵지 않은 이야기 아닌가.
복수라는, 조금은 찜찜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가면서 느껴지는 전반적인 정서가 웃음이었던 건, 우선은 회사의 사장인 후고가 어지간하면 합법적인 틀 안에서 자신의 사업을 진행하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복수란, 정확히 말하면 일종의 큰 골탕 먹이기 정도여서, 예를 들면 축구 코치에게 꼭 축구공처럼 칠해놓은 콘크리트 공을 차도록 유도하는 식이다(물론 뼈가 부러지긴 했다).
하지만 그 못지않은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역시 등장인물들이 전반적으로 조금은 소심하면서도 증오에 사로잡힌 광정인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옌뉘와 케빈은 둘 다 빅토르 때문에 인생을 날릴 뻔했지만 어쨌든 살아남았고, 복수도 그 수준으로 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건 케빈의 양아버지이자 케냐의 마사이 전통 치유사인 소 올레 음바티안이라는 캐릭터인데, 시종일관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확실한 주관을 가지고 제 잘난 맛에 살아가고 있는 그 덕분에 이 복수 작업은 전혀 예상치 못한 데로 통통 튀어 다니게 된다. 미워할 수 없는 고집쟁이랄까.
책 전반에 작가의 현대미술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관련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조금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