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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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러스트 벨트라는 말이 있다미국의 북동부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공업지대로 한동안 미국 경제를 이끌었지만지금은 이름(Rust)처럼 쇠락해서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쇠퇴지역이다이 책의 제목인 힐빌리는 바로 이 지역에서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는 저소득층 백인들을 가리키는 이름이다이 책을 쓴 작가의 출신지역이기도 하고참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한다(물론 어느 정도의 각색이 들어가긴 했을 것이다).


전형적인 미국 남부의 백인이라는 이미지가 있다소득주준은 중위 이하이고교육수준도 높지 않다종교적으로는 보수적 기독교를 믿고정치적으로는 공화당의 열성지지자로 여겨진다이 책에 나오는 힐빌리들은 딱 이와 비슷해 보이지만 약간의 차이도 있다대표적으로 그들 대부분의 삶에서 기독교는 명목상의 전통혹은 문화처럼 보일 뿐실제로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았다그리고 이 부분은 부분부분 언급되는 내용으로 볼 때꽤 중요한 포인트였는데교회는 작가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정서적 지지와 경제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작가이자 이 책의 주인공이기도 한 J. D.는 전형적인 힐빌리 가정에서 태어났다가정폭력으로 인한 이혼어머니는 약물에 빠져있고매번 새로운 남자를 아버지 후보로 데려오는 일이 빈번했다시골 특유의 의리’ 비슷한 정서는 조금이라도 자신의 가족에게 모욕을 주는 사람을 폭력적으로 응징하는 걸 정당하게 여기게 만들었고늘 경제적으로 쪼들릴 수밖에 없었다.


학교 성적 따위를 고민할 처지가 아니었다당장에 출석이라도 하면 다행이었고하루하루를 내일에 대한 불안감으로 살아가는 아이에게 학교 성적에 대한 고민은 사치였다문제는 그가 처한 상황을 극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별다른 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기껏해야 아이를 가정에서 데리고 나와 위탁가정에게 맡기는 게 전부인 정부정책이 과연 누나와 떨어지기 싫은 이 아이에게 정답일까?


경제적 침체로 인해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의 전반적인 정서가 무기력함일 때무엇을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을 때그 지역을 변화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술과 마약에 중독되어 하루하루를 버리는 어른들을 보면서십대에 임신과 출산또는 낙태와 유산 등을 경험한 청소년들은 자신을 좀 더 계발시킬 수 있는 여유나전망을 가질 수가 없었으니까현재와 미래가 모두 함께 끝없이 침전하기만 할 뿐.





그런데 이런 회고록까지 쓴아직 젊은 작가는 주립대학교를 졸업하고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꽤나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책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꼽는 것 같다.


먼저 작가가 가장 자주 언급하는 건 조부모의 정서적 지지였다물론 그들 역시 전형적인 힐빌리였지만자신의 손주들에게만큼은 전적인 사랑과 관심을 쏟을 줄 아는 사람들(물론 그 방식이 종종 과격하긴 했지만)이었다덕분에 주인공은 물건이 날아다니는 험악한 상황이 집에서 벌어져도집 한쪽 구석에서 벌벌 떨면서 불안해하기 보다는 근처의 조부모집으로 피신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를 꼽는다면자신의 현재 상태를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힐빌리들은 대체로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솔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직장을 얻고도 무단결근을 밥 먹듯 하거나 하루에 다섯 번씩 화장실에 가서 30분씩 보내고 돌아오면서도해고를 당하면서는 고용주를 탓한다.(문득 몇 년 전작업장에 와이파이를 끊어서 작업 중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하는 걸 못하게 했다고 특근 거부에 나섰다는 현대자동차 노조가 떠오른다모든 걸 다른 사람의 탓으로 여기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현재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책 후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그가 2년도 안 돼서 대학을 졸업하고 명문대 로스쿨에 들어갔다는 게 아니라비로소 주인공이 자신이 모르는 걸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어쩌면 이 부분이 변화의 시작점이었을 지도 모르겠다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마음을 열고 수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선거 때만 되면 수많은 정치인들이 나서서자기가 온 나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슈퍼맨이나 되는 양 공약을 남발한다물론 당선되고 나면 대부분은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경비견으로 변하지만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드는 생각은결국 변해야 하는 주체가 변하고자 하지 않는다면아무리 좋은 정책도 부작용만 커질 뿐이란 점이다.


마음을 바꾸는 일은 정책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빈곤이라는 문제 역시 정책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좌파나 우파 어느 쪽의 주장이 옳다는 의미가 아니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좀 더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우린 이 문제를 진지하게 개선할 의지와 능력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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