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근차근 빌드업.

영화는 감독의 전작 명량’ 때처럼후반부 30여 분의 해전신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매우 잠잠한 전반부 설정들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전라좌수영을 이끄는 이순신 장군과 경상 우수영을 맡고 있는 원균은 작전구역이 바로 붙어있어서 협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함께 작전회의에 참가하고전술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충돌은 좀처럼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지루하게 이어진다여기에 적보다 적은 수의 병력으로 어떻게 전투에서 이길 수 있을까를 지루하게 고민하는 이순신.


이 빌드업의 또 하나의 주된 캐릭터는 변요한이 연기한 일본 수군 지휘관 와키자카다흔히 이런 류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병력의 수만 많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사실 실제로는 거의 그렇긴 하지만상대를 얕잡아보기 바쁜 단순 멍청한 인물과는 전혀 다르다적장인 이순신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있었고(실제로도 그랬다), 그의 전술이 무엇인지를 끊임 없이 고민하며 연구한다.


결국 전투가 시작된 후에도 이순신과 와키자카의 캐릭터에서 비롯된 탐색전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적들을 유인하기 위한 이순신의 선수에 말려들지 않은 채 진형을 유지하는 와키자카와어떻게든 상대를 끌어내기 위해 점점 위험한 공세를 이어가는 조선군과 이로 인한 긴장감위기의 순간 마침내 나타난 거북선 세 척과 대규모 해전신은 잘 흔든 콜라의 뚜껑을 따는 듯한 청량감을 준다.





인상적인 배우들.

배우들의 호연도 인상적이다쓸 데 없는 억지 개그 캐릭터도 없고사실 영화 전반적으로 대사량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았기에어떻게 캐릭터를 소화하고 역할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 쉽지 않았을 텐데도 말이다앞에서 언급했던 와키자카 역의 변요한도 굉장히 좋은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어서언뜻 이순신 역의 박해일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원균 역의 손현주 배우였는데이 뭐랄까... 논리정연하게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 같지도 않고그렇다고 아예 전술의 기본이 없는 것도 아니고용맹만 믿고 무조건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캐릭터도 아닌데 묘하게 깐족거리면서 작전을 방해하는 역할을 찰떡같이 수행한다아마도 그에게 가장 부족했던 건 상상력혹은 전술적 창의력이 아니었을까.


해전은 아니지만 영화 후반 의병들을 이끌고 왜적과 맞서 싸웠던 지휘관 황박 역의 이준혁도 인상적이다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항왜(조선에 항복하고조선을 위해 싸운 일본 출신 귀화인)와 함께 목숨을 바쳐 적들을 막아내다 전사하는 인물이다아 이런 인물도 있었구나 싶은 느낌.


이외에도 영화 정보를 보니 눈에 띠는 배우들의 이름이 여럿 있다영화를 보면서 크게 인식하지 못했다는 건그만큼 튀기보다는 배역에 잘 어우러졌다는 의미이겠지.





기본의 위대함.

당시 이순신 휘하의 조선 수군은 정말 위대했다말과 글로 들을 때와 달리 확실히 영상으로 보면바다 한 가운데서그것도 빠른 물살을 가진 좁은 해협에서 큰 배를 선회하고포를 쏘고아니 진형을 갖춰 정선해 있는 것 자체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이순신의 전술이 아무리 뛰어났다고 하더라도영화 속 와키자카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천하무적의 완벽한 전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한정된 병력을 이리저리 배치하는 진형은어떤 점에서 강점이 있고 또 동시에 약점도 존재한다훌륭한 군대는 강점을 최대한 살리고 약점을 적에게 노출하지 않을 수 있는 부대다.


그리고 그 기본은 (수군의 경우같은 시간에같은 박자로 노를 젓고강한 물살을 거슬러 배를 지탱할 수 있도록 서고하는 기초적인 기술들이다방진을 이루어 적과 싸웠던 중세 유럽의 군대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서로 바짝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서 있는 기술이었듯이사실 비결이라는 것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군대에 가면 괜히 줄 서고대형에 맞춰 걷고뛰고 하는 것부터 가르치는 게 아니다.


기본이 있어야 상상력도창의력도 발휘가 되는 법이다어린 아이가 아무렇게나 붓질한 그림이 피카소나 다른 추상화가들의 작품과 다른 데는 다 이유가 있다그런데 요샌 이 기본이라는 걸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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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2-09-06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가는 감상평입니다^^

노란가방 2022-09-06 18:24   좋아요 1 | URL
오호.. 영화는 재미있게 보셨나요?

고양이라디오 2022-09-08 07:10   좋아요 0 | URL
네 전 재밌게 봤습니다^^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