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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의 초대
박병철 지음 / 필로소픽 / 2014년 5월
평점 :
대학 시절 나의 철학공부는 비트겐슈타인 앞에서 멈췄었다. 서양 고대 철학부터 시작해서 중세, 근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렀을 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따라갔었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분석철학에 이르면서 약간 당황했었다. 칸트, 헤겔, 로크, 데카르트 등의 근대철학자들에게까지만 해도 그들은 세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나름의 방법에 따라 이 작업을 수행했지만, 이 사람은 도무지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언어’였다. 이런 급격한 시선의 전환을 당시 나는 따라가지 못했던 것 같고, 사실 그 뒤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도서관에 다니는 장점은 이런, 일부러 구입하지는 않을 것 같은 책을 펴볼 수 있는 기회를 종종 얻게 된다는 거다.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 연구로 학위를 받은 국내 저자가 직접 그의 철학을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책이다. 우선 국내 저자가 쓴 책인지라 읽기에 훨씬 편했고, 개정판을 내면서 앞서의 글을 좀 더 다듬었기에 정리도 좀 더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안내하는 개론서로는 괜찮은 책인 듯싶다.
비트겐슈타인은 독특한 인물이었다. 흔히 전기 비트겐슈타인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으로 구분할 만큼, 초반의 철학과 후반의 철학이 확연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한 사람의 철학자가 그의 인생 가운데서 자신의 철학을 조금씩 발전시켜 나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비트겐슈타인의 경우 그 차이가 너무 확연하기 때문에 아예 이런 식으로 구분하기도 했던 것.
그리고 이런 차이를 발생시킨 데에 큰 영향이 되었던 ‘휴지 시기’, 그는 이제 철학에서 할 말은 다 했다면서 아예 철학계를 떠나 교사 일을 하기도 한다. 십 수 년 만에 돌아와서 다시 책을 펴냈는데, 자신의 이전 사유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완성된’ 철학만을 따라가도 좋을 것 같은데, 초반에 냈던 책이 워낙에 독특하고 많은 영향을 끼쳤던 지라, 별도로 연구되기에 이른다.
초반의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철학적 문제를 언어의 문제로 치환하려 했다. 참과 거짓이 분명한 언어와 그렇지 못한 언어를 구분하고, 전자만이 의미가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도덕이란 무엇인지 하는 질문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그걸 제대로 된 언어로 표현할 수도 없는데 매달려서 뭐하느냐는 느낌.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들만 추려나가다 보면 좀 더 온전한 이해에 이를 수 있다고 그는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원리를 가지고 한참을 파본 결과 예외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결국 비트겐슈타인은 초반의 논지를 좀 누그러뜨리고, 모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들을 제시한다.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수정하려는 모습은 학자로서 훌륭한 모습이지만, 개인적으로 그 결과물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뭐 내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겠지만.
오랜만에 든 철학책이었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비트겐슈타인 철학을 한 번쯤은 정리할 필요가 있었던 차에 괜찮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