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믿음의 글들 240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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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가 자신이 쓴 소설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했다는 소설인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건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리뷰를 썼던 날짜를 보니 군대에 있었을 때였고뭐가 그리 불만이었는지 책에 관한 아쉬운 소리만 잔뜩 써 놨더랬다아마 그 땐 이 작품을 읽을 만한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 때 가장 아쉽게 느꼈던 점루이스의 다른 책들과 다르게 뭔가를 너무 숨겨놨다는 부분이었다문학작품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를 부정하려고 했던 거다모든 걸 그냥 보여줄 생각이었다면제품 카탈로그를 쓰지 소설을 쓸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이번에 독서모임을 하면서 다시 읽어본 이 작품은그 때와는 전혀 다른 감상을 주었다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프시케와 에로스 신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 작품은기본적으로 원작의 구조를 그대로 안고 간다다만 작가는 여기에 시간성을 부여하고역사적 배경과 문화를 덧입혀서 등장인물을 실감나게 살아있는 인물로 만든다프시케가 신전에 바쳐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그녀가 마주한 딜레마를 무엇보다 안타까운 상황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신화가 사실이 되었다루이스가 기독교를 설명할 때 즐겨 사용하던 표현이 문득 떠오른다.


루이스는 단지 이야기의 내용에 실감만을 더한 게 아니다소설의 주요 전개는 신화 속 이야기와 비슷하게 진행되지만어느 순간이 이르면 주인공이 바뀌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원래 신화는 프시케가 에로스를 향한 사랑을 회복하는 데 중점이 있지만루이스가 새롭게 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그런 프시케에게 남편의 얼굴을 확인하도록 부추겼던 언니인 오루알이다.


주인공을 바꿈으로써 자연히 주제도 변할 수밖에 없었다사랑과 질투인간의 약점으로서의 호기심 같은 주제는 물론 남아있다하지만 여기에 루이스는 성장과 깨달음신앙에 관한 오해와 그걸 극복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의 자기 부정과 같은 주제를 더한다신을 원망하며 고소하려던 오루알은 이야기가 끝날 무렵자기가 고발하고 있는 것이 실은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그 반전의 짜릿함이란..

 


책 전반에 드러나고 있는 주제는 역시 사랑이다작품 속 인물들은 다양한 방식의 사랑을 하고 있는데때로 그 사랑은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철저한 자기 중심의 사랑도 있고순수한 이타적 사랑도 있다누군가는 사랑을 강요하기도 하고또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감당하려고 나아간다.

 

루이스는 오루알의 행동을 통해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는 말과 행동이 실은 자기 사랑의 변주일 수 있으며그런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한더 높은 사랑의 경지에 이를 수 없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무단으로 쓰레기가 버려지는 장소에 큰 거울을 설치하는 경우가 있다쓰레기를 버리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면 많은 경우 계속 버리지 못한다고 한다비슷하게 우리는 자신의 얼굴이 어떤 지는 보지 못한 채일방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강요한다그게 연애의 감정이든상하관계든 그런 식의 강요는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우리 시대 불리는 노래의 태반은 사랑을 주제로 한다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더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우리가 먼저 우리 자신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과연 멋진 소설이었다루이스가 쓴좀 더 유명한 문학인 나니아 연대기보다도 이쪽이 훨씬 구성이 잘 짜여있다캐릭터는 훨씬 입체적이고담고 있는 내용 또한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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