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여인들
아일린 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즐거운상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중세 유럽은 기독교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그 시대의 여성들의 삶 또한 이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보통 기독교의 여성에 관한 이해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것으로 여겨진다실제로도 그랬던 것 같다여성은 보조적인 위치에 있는 것으로나아가 하와로부터 시작되는 유혹과 같은 악덕과 관련된 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중세 어느 시점에서 교회는 여성에 관한 또 다른 관점을 계발해 낸다.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찬양이 그것이다저자에 따르면 여기에 기사도적인 로맨스가 더해지면서 하나님 다음 가는 자리로서의 여성이라는 개념이 중세를 풍미했다고 말한다재미있는 반전이다.


물론 이 두 개의 개념이 전환의 형식으로 대체된 건 아니었다두 개념은 항상 섞여 있었고시점에 따라지역에 따라또 민족적 전통에 따라 어떤 선을 선택할지는 달라지곤 했다그러니까 중세의 여성관은 매우 이중적인 모순적 상태를 애매하게 유지하고 있었다는 말이다이런 기사도적 이상은 궁정연애에서나 통하는 말이었고그 밖의 계급사회에서는 거의 통용되지 않았다고도 한다.

 


기본적으로 봉건제 사회였던 중세에는 여성들도 토지를 소유할 수가 있었다이건 이중적인 효과를 가져왔는데우선은 봉건제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인 토지를 보유함으로써 경제적인 차원에서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토지를 소유한 여성은 그 토지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어떤 토지를 상속이나 증여받은 여성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그 토지를 목적으로 하는 정략결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중산층 이상그러니까 귀족이나 지방유지급(책에서는 향반으로 번역한다)에 해당하는 여성들의 경우 다양한 일들을 했다영주나 귀족인 남편이 전쟁에 나갔을 경우그 영지와 영토를 전반적으로 돌보는 일은 아내에게 맡겨졌다남편이 포로가 되기라도 하면 그 몸값을 만들기 위해 세금을 걷고재산을 매각하고 하는 일을 주도한 것도 여성이었고.


책에는 꽤 흥미로운 예도 등장하는데영국의 경우 몇몇 성들을 성주의 아내들이 최종지휘관으로서 지켜내기도 했다는 기록이다이 정도면 부인을 넘어서 남편의 동지의 역할까지 했다고 봐야 할 듯도 싶다여기에 소위 가사라고 불리는 일들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일로 맡겨졌으니까.


조금 더 낮은 신분의 여성들도 바쁘긴 마찬가지였다고 한다여성들은 농사와 목축실을 잣고천을 짜고술을 만들고음식을 만들어 팔고 하는 일들로 가정경제를 위한 추가적인 수입을 벌었다남편의 일을 대체로 조수 역을 맡아 하기도 했고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은 자신을 위해또 자신이 속한 가족을 위해 비슷한 일을 해야 했고예나 오늘이나 맞벌이는 기본 옵션이었다.

 


책에서 다루는 또 한 가지의 주제는 중세 여성들의 교육과 그 주요 기관으로서의 수녀원의 역할이다사실 이 부분은 정확히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대체로 글을 읽고 쓰는 정도의 능력과 에티켓 등을 배웠던 것 같다다만 낮은 신분의 여성들의 경우 이보다 못한 교육기회를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들은 수녀원에 입회하거나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중세 초기 몇몇 수녀들은 뛰어난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수준 높은 학식을 보여주었지만중세 후기로 갈수록 수녀원의 전반적인 지적수준이 떨어지기 시작했다(아마 이건 수녀원만의 현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그들도 바빴구나 싶다생산력이 높지 못했기에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면서여성이라는 이유로 빼는 식의 시도는 허용되지 않았겠지만열 살도 되기 전에 도제나 하녀로 들어가 일을 배우거나 돈을 벌어야 했던 낮은 계급의 여성들도토지에 묶여서 본의와는 상관없는 결혼을 하고 그곳에서 일해야 했던 상류층도 고달프기는 비슷했을 듯하다물론 기사도 정신에 입각한 궁정연애 놀이를 즐기던 성 안의 여성들은 조금 달랐겟지만.


그렇게 두껍고 자세한 서술은 아니었지만중세 여성들의 전반적인 모습을 스케치해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전반적인 사회상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중세의 여성)를 깊이 파고들어가는 접근은 독자의 교양의 깊이를 깊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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