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신 거부자들 - 잘못된 정보는 어떻게 백신 공포를 만들어내는가
조나단 M. 버만 지음, 전방욱 옮김 / 이상북스 / 2021년 5월
평점 :
무엇보다 제목에 이끌려서 손에 든 책이다. 코로나19가 2년 째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백신이야말로 우리를 이 상황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백신 거부를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정신 나간 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들은 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책은 백신 거부의 역사가 어제 오늘에 시작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건 18세기 말 백신이라는 도구가 최초로 등장했을 때와 거의 시간을 같이하고 있었다. 그들(백신거부자들)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침해, 그리고 (흥미롭게도) 당대의 과학지식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백신을 거부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초기 백신접종은 위생적으로 충분히 보장되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감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다만 이런 거부가 조직적으로 나타나게 된 데에는 정부의 백신접종 의무화(강제화) 조치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방역을 위한 지침이었지만, 앞서 언급한 의심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된 백신의무화 조치는 심리적 반발을 불러올 소지가 있었던 것 같다.
예컨대 인도의 독립운동가 간디는, 천연두가 전염성이 없으며, 장 질환으로 인해 피가 탁해지는 것이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주변에도 백신을 거부할 것을 설득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그를 믿고 따르던 많은 사람들을 죽어가게 만들었지만, 여기엔 당시 인도를 억압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인도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다. 간디의 예는 백신 거부가 엄밀한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좀 다른 이유,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동기에서도 기인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하나의 주요한 동기는 ‘금전적 이익’인데, 이건 최근의 예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1990년대 이래로 오랫동안 퍼져온 가짜뉴스가 하나 있다. 바로 백신이 아이들의 자폐증을 유도한다는 헛소문이다. 여기엔 함량 미달의 수준 낮은 논문들, 자료의 왜곡, 구체적인 실험이나 연구조사의 부재, 언론의 자극적인 기사 남발 등 오늘날 가짜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문제점들이 개입되어 있었다.
이와 관련된 최초의 논문을 작성한 앤드류 웨이크필드의 본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그 자신을 제외하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드러난 사실만 보면, 그는 자신의 연구 설계 자체가 허술하고,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어떤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애초의 주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그의 주장을 신뢰하는 많은 이들의 지갑을 여는 데는 확실히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가 뭐래도 최근의 코로나 대처에서, 우리 정부는 꽤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검사 한 번 하는 데 수 십 만원을 내야 하는 옆 나라 일본과도, 애초에 검사결과나 수치 자체를 의심하게 되는 중국과도 차이가 있다. 그런데 우리 언론과 야당의 발언만 보면, 우리나라의 상황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안 좋은 것만 같다. 덕분에 백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방역조치가 방해받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언론은 클릭질 장사로 돈을 벌기 위해서, 야당은 정부를 공격해 정권을 잡기 위해서 벌인 위험천만한 불장난이었다.
책 후반에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하나 실려 있다. 백신을 거부하는 부모들은 좋은 부모가 되는 데 깊은 관심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대개 대학교육을 받았고, 중산층이며, 다수의 육아 책을 읽고 있다. 스스로를 ‘애착’이나 ‘자연’육아에 관심이 있는 깐깐한 부모라고 생각한다는 부분이다. 마치 사이비 종교나 사상적 확신범처럼 굴고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많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오늘날, 사람들은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데 더 어려움을 느낀다. 때문에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옳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도, 그들은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자신의 믿음을 입증할 어구들을 몇 개 금세 골라올 수 있다.
책 말미에서 저자가 제안하는 해법은, 좋은 이웃으로서 본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하는 이웃들이 백신 접종의 안전성과 접종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임을 삶으로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는 건데, 조금은 느려 보이는 방법이지만, 뭐 어쩌겠나. 증거를 들이밀어도 고집을 부린다면.
흥미로운 주제지만, 저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배열하고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데 조금 약점을 보인다. 좀 아쉬운 부분인데, 덕분의 책의 내용일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좀 더 좋은 편집자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이 주제에 관해 다양한 정보들을 읽을 수 있었던, 그리고 필요한 사람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 만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