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얇지만 괜찮은 통찰을 담고 있는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비평서다개인적으로는 피로사회”, “아름다움의 구원에 이어 세 번째 손에 든 책이다이번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주제는 진통사회이다우리말로는 고통 없는 사회로 번역되었는데삶의 모든 부분에서 고통이라는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미덕이 된아니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된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책의 시작부터 진통사회의 문제점이 날카롭게 지적된다고통에 대한 공포가 만성적인 마취상태를 초래하게 되고이는 사회적으로는 대결을 초래할 수 있는 갈등이나 논쟁을 제거하고정치적으로는 일치와 동의를 강제하고 압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갈등과 논쟁이 사라지고 일치와 동의만 남은 세상은 완전히 경직된끔찍한 전체주의적 사회일 것이다.


이런 진통의 기능은 다양한 요소를 통해 이루어진다삼성전자의 이재용도 빠져들었다는 프로포폴 같은 마약성 진통제가 남용되고마약 사건도 이전에 비해 그 발생빈도가 훨씬 늘어나고 있다저자는 그 이외에도 소셜미디어나컴퓨터 게임 역시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지적한다그 역시 인식과 성찰을 가로막고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그렇게 아주 작은 고통조차도 제거해 버리려 애쓰더라도우리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동화 속 공주처럼두꺼운 매트리스 아래의 완두콩으로 인한 고통을 제거하면이제 매트리스 자체로 인한 고통을 느끼게 될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저자는 우리에게서 고통이 사라진다면 인간다움 또한 함께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고통에 대한 과도한 회피의식은 생존의 히스테리와도 같다오직 생존만이 전부가 되어버린 상태는 좀비와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

 


문장 하나하나가 현실을 날카롭게 베어내면서 그 안에 담긴 고름을 짜내 드러낸다중립중도가 선()인 양 가장되는 사회에서는 치열한 토론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양비론과 양시론밖에 남지 않은 언론의 뉴스에 볼 것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처음부터 진영논리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키클롭스 언론들은 애초에 버리면 그만이지만그저 모두 까기에나 열을 올리는 자칭 중립적 언론들도 쓸 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고통이 사라지면서 삶과 세상의 좀 더 깊은 의미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곱씹어 볼만한 부분이다소셜미디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여행 사진음식 사진에서 인생의 좀 더 깊은 의미는 쉬이 발견할 수가 없다단지 현재를 즐기라는 지긋지긋한 메시지만 반복될 뿐사람이 달라지고장소가 달라지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게 없다.


고통과의 싸움고통을 제대로 직면하는 과정에서 사고는 깊어진다그러나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오래된 진리는 오늘날 어느 샌가 사라져버렸다모두가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에 쫓기고 있는 느낌이다대화를 해도 좀처럼 깊은 데까지 나아가기가 힘들고겉도는 경우가 태반인 이유다.

 


다만이렇게 고통을 제거하려는 과도한 시도가 일으킨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넘어가고통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나 의미와 닿아있다는 데까지 나아가는 게 과연 적절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통의 과도한 회피가 문제라면고통에 대한 과도한 집착 역시 건강해 보이지는 않는다(사디즘 같아 보이기도).


좋든 싫든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통을 마주한다그건 일종의 불가항력적인 재난이다(고통 그 자체는 선이 아니다). 우리가 배워야할 건 어떻게 그 고통을 잘 받아들이고 극복해 성장할 수 있을까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