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상상력 -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시대, 정치란 무엇인가
김병권 지음 / 이상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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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의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저자가 우리나라 진보정치세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짚어보는 책이다. 1장과 2장은 각각 디지털 플랫폼 경제와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탄소중립 정책을 살펴보는 실제적인 주제를 다루는 장이고, 3장과 4장은 좀 더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플랫폼 사업과 관련된 노동자들의 상황을 분석하는 1장이 가장 인상적이다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수준으로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편의성어차피 남는 시간남는 공간남는 차량 등을 나누면서 자원절약도 실천할 수 있다는 등등 좋은 이야기들로 포장되어 있지만실제로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실태는 그리 좋지 못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플랫폼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기업의 인력 운용형태가 기존에 법으로 규제를 받고 있던 기업들과 다르기에즉 법의 사각지대에서 장사를 하고 있기에 벌어지는 문제다그렇다면 저자의 말처럼얼른 새로운 기업형태에 맞는 노동관계법을 제정하면 될 일인데기득권 정당들은 좀처럼 이런 문제에 앞장서 나서지 않는다어떤 형태든 내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다면 노동이라고 인정하면 될 일을 말이다.


     1장 후반부의 블록체인을 이용한 가상화폐 문제를 다루는 부분도 흥미롭다분권적이이라서 중앙의 힘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기술로 홍보되었던 블록체인과 가상화폐가 실제 운용에 있어서는 굉장히 중앙집권적이라는 지적은 새롭다.


     비트코인의 전 세계 채굴양의 90%를 상위 10대 업체가 독점하고 있고그 중 3개의 중국업체가 50%를 점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0.0001%의 블록을 형성해 거래처리를 할 때까지 99.9999%의 사용자들은 기다려야 하고그 소수가 어떤 사람의 트래젝션을 처리해 줄지는 전적으로 그들 마음이라는 부분도 그렇고결국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전 세계적인 투기판만 열렸을 뿐실제로 우리 삶을 변화시킬 만한 내용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기후 위기에 대한 해법을 설명하는 중 이런 내용이 있다저자는 미래 공상 영화에 나온 것처럼 어마어마한 기계들과 빽빽한 철골 건물지상을 넘어 하늘까지 뒤덮은 자동차와 비행기의 모습은 상상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그런 미래는 지금보다 수십 배의 에너지와 자원이 없으면 구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결국 화석연료의 사용을 중단하고 태양열 등의 친자연적 에너지를 사용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하지만 저자 역시 인정하듯이런 에너지는 그 효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화려한 미래는커녕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수준의 편의성도 보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결국 끝없는 팽창을 추구하는 현재의 생산활동을 절제하고노동시간조차 단축하면서(주 15시간 노동제좀 더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느슨한 사회를 꿈꾸는 듯하다.


     문제는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하는 점이 아닐까 싶은데... 과연 인류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편리함을 기꺼이 내어놓고 친환경적 삶을 따라 살려고 할까당장 스마트폰과 인터넷자가용을 포기할 수 있을까이런 상황에서 어떤 정치세력이 이 일에 앞장서서 실현할 수 있을지.


     그리고 책에는 언급되지 않지만그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적지 않은 에너지와태양열 패널 폐기물 같은 문제들이 확실하게 해결되지 않는 한어떤 것도 근본적으로 친환경적이지는 못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진보세력이 나아가야 할 철학적사상적 미래를 설명하는 책의 후반부는 확실히 집중도가 떨어진다.(이 책을 받은 장혜영 의원이 목차와 1장을 보고 답을 했던 이유가 이거였을까몇 페이지 되지 않는 지면에 하나의 사상을 담아낸다는 일이 쉬운 일도 아니고그렇다고 설명이 흥미롭지도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당과 제1야당이 모두 기득권에 사로잡혀 있다는 레토릭은 지겹게 반복되어온 내용이고그럼 진보정당은 어떻게 자신의 입장을 현재의 제도권 안에서 관철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론은 잘 보이지 않는다심지어 저자는 점진적’ 변화를 넘어서는 대개혁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말이다.


     여기에 진보라는 그릇에 담아내려고 하는 재료가 너무 많다는 생각도 사라지지 않는다. “노동조합실업자들불안정 노동자들여성주의자들생태주의자들반제국주의자들사회민주주의자들민주적 사회주의자들까지 모두 포괄하는게 진보의 미래인가. LGTB와 기후위기청년문제는 진보의 미래에서 같은 무게를 가지는 걸까애초에 섞이지 않는 이질적인 생각들이 그저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진보의 열차의 같은 칸에 끼워 넣어진 건 아닌지 모르겠다이들 사이에는 철학적 충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정치적 진보 섹터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이 알고 있어야 할 내용들을 나름 잘 담아낸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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