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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모토히로 카츠유키(Katsuyuki Motohiro) 감독, 사토 타케루 외 출연 / SM LDG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731부대의 후예.
영화는 죽지 않는 특별한 인종인 ‘아인(亞人)’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말하자면 일종의 초능력물인데, 이런 특별한 존재를 다루는 헐리우드의 시선과 이 영화가 얼마나 다른지 주목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원더우먼이나 슈퍼맨 같은 존재들은 지구를 구하는 히어로로 활동하는 반면, 이 영화 속 아인들은 일본 정부에 의해 감금된 상태에서 온갖 종류의 생체실험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그 생체실험이라는 게 팔 다리를 톱으로 잘라내고, 독가스를 마시게 하고 하는 수준이니...
영화의 첫 장면을 보는 거의 동시에 떠올랐던 게 과거 일제가 동아시아를 침탈했을 때 운용했던 생체실험 부대인 731부대였다. 수많은 조선인들도 이 마귀들에게 잡혀가서 온갖 실험을 당하다 죽어갔고, 그 결과물로 일본 녹십자(미도리주지)가 만들어졌다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영화 속에서도 언뜻 이를 떠올리게 하는 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이긴 하지만, 이런 식의 사건이 뻔히 자기들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이런 장면으로밖에 전개시키지 못하는 걸 보면 이쪽은 정말 몰역사의식의 극치를 달리는 사람들인 건지. 참고로 이 소재는 제대로 문제의식을 갖고 묘사되지 않고, 그저 주인공 중 하나인 사토(아야노 고)가 테러를 일으키는 이유로만 등장한다. 한쪽은 생체실험, 반대쪽은 테러.. 이건 뭐...
오직 나만 살면 돼.
실은 이런 특별한 존재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이중적인 시선은 앞서 언급한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여러 차례 다뤄진 바 있다. 어벤져스들은 일종의 규약에 의한 제제를 스스로 받아들였고, 엑스맨 시리즈의 뮤턴트들도 굉장히 조심하며 활동한다. 배트맨과 슈퍼맨의 갈등도 그 핵심에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가지는 위험성에 관한 철학적 고민이었고.
물론 헐리우드에도 (영웅이 되기를) 다 때려치우고 자기 욕구를 분출하는 능력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대개 빌런화되어서 무찔러야 할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누군가를 보호하고 지키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 그저 자기 한 몸 보전하고, 원수를 갚는 데만 집중한다.
영화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캐릭터는 테러를 막는 쪽에 선 나가이(사토 타케루)인데, 영화 초반 팔 다리가 마취도 없이 잘려나가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구해준 사토가 사람(생체실험 연구소의 경비들)을 쉽게 죽이는 모습을 보고 그와 손잡기를 거부하는데, 이쯤 되면 뭔가 휴머니즘에 입각한 행동을 할까 싶지만 그나마 선택적 휴머니즘이라는 게 한계. 그의 ‘휴머니즘’에는 20년 동안 생체실험을 당했다던 사토나(이 점이 테러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동정심이 생기는 이유다),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다른 아인들은 들어가지 않는 모양.
결국 그는 자기 한 몸 구해 도망치는데, 애초에 그럴 거면 굳이 실험실 인간들에게 협조해 사토를 잡아 죽이게 만든 이유는 또 뭔지. 그냥 엉망진창이다.
실사화의 실패.
요새는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은 특히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실사화 영화들이 자주 보이는 것 같다. 다만 이 경우 제대로 된 작품이 어지간해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게 한계인데, 만화라는 매체가 가질 수 있는 특유의 과장된 정서가 실사화 될 경우 매우 어색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모습들이 자주 발견되는데, 우선 액션신이 너무 허접하고,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잔뜩 허세가 들어가 있다. 깊은 내면 연기를 하지 못하는 배우들이 내뱉는 대사들은 그냥 대본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고.
무대가 달라지면 그 무대에 맞춰 발성부터 동선, 표정, 속도, 리듬 등 모든 것이 최적화되어야 한다. 영화와 뮤지컬은 다르고, 만화와 영화는 또 다른 법이다. 심지어 영화와 드라마도 달라져야 하니까. 그냥 카메라 앞에서 만화 캐릭터를 연기하려고 해서는 제대로 된 영화가 나올 리 없다. 여러 모로 답답한 결과물. 많은 일본 실사화 영화들이 이런 식으로 허접한 구성을 보이거나, 아예 뜬금없는 안드로메다로 빠지는 철학을 되뇌이거나 하는 식이다.
뭐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도 어딘가에는 있을지 모르니까. 관객에 맞는 작품 수준이 나오는 거겠지 싶으면서도, 잔잔한 일상 가운데 진한 감동을 주는 특유의 분위기 있는 작품도 종종 보이는 걸 보면, 좀 더 장점에 집중하는 게 어떨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