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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풍요 - 돈 음식 몸 시간 장소 그리고 그리스도인
월터 브루그만 지음, 정성묵 옮김 / 한국장로교출판사(한장사) / 2021년 3월
평점 :
이 책은 ‘물질성’에 관한 기독교적 입장을 다루고 있다. 땅, 세상, 물질과 같은 용어들은 성경에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하나님에게 적대적인, 내지는 그분의 뜻에 저항하는 반대편에 있는 것들이라는 의미이고, 이 경우 그리스도인은 서둘러 그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권장된다. 그러나 이 용어들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구성하는 물리적인 것들이다. 이 경우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대상이고, 우리가 함께 회복되어 가야 할 무엇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두 가지 개념을 혼동, 혹은 적절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개 그들은 첫 번째 의미로의 “세상”만 알고 있고, 무엇이든 “세상”과 관련된 것이라면 피하고 멀리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여긴다.(물론 실제 삶에서는 그렇게 살지도 않는다. 오히려 매우 “세상”을 사랑하는 것처럼 살 때가 많다.) 당연히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이 책은 소위 기독교 일각의 그런 잘못된 환상을 교정하고, 나아가 우리에게 밀접한 물질세계를 어떻게 구속해 나갈 수 있을지에 관한 탁월한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돈, 음식, 몸, 시간, 장소라는 다섯 가지 개념을 탁자 위로 끄집어내고, 이것들에 관한 오해와 바른 이해를 차근차근 풀어낸다.
돈과 관련해 저자는 ‘비생산자’의 범주를 실직자에서, 투기와 정당한 몫 이상의 과도한 보수를 받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로까지 확장시킨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일반 노동자들의 수백 배의 보수를 받는 관리자들은 모두 비생산자들이다. 그들이 실제로 뭔가 만드는 일은 전혀 없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많은 돈을 벌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기독교적 재물관에 들어올 자리가 없다.
음식은 또 어떨까. 저자는 단순히 많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산되는가 하는 과정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마나 윤리적으로 생산되고 있는가도 물질성을 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세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또 음식을 누구와 나눌 것인가도 빼먹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고.
몸과 관련해서도 꽤 흥미로운 내용들이 보인다. 저자는 관계는 무시한 채 성애에만 집중하는 왜곡된 문화를 지적하기도 하고, 우리의 몸이 위치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도 한다. 나아가 불멸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 부활을 기대하는 좋은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교회는 이 세계에 대한 좀 더 제대로 된 이해가 필요하다. 코로나 상황 가운데서 교회는 더 이상 그들만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 위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 주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들의 현실 인식은 안쓰러울 정도이고,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는 고고함이 기독교의 본질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이들도 보인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비둘기처럼 순결할 뿐 아니라, 뱀처럼 지혜로울 것을 기대하셨다. 특별히 우리와 밀접하게 닿아있는 물질성에 관한 바른 이해는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이 작은 책은 이 작업을 시작하는 데 충분한 도약대가 될 것 같다.